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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세계의 연대기 (존 맥피) - 글항아리사이언스

야곰야곰+책벌레 2023. 10.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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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 심장한 제목. 수수께끼를 풀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 물씬 풍긴다. <사피엔스>, <총균쇠>, <문명과 전쟁>과 같은 인류사를 한꺼번에 덮칠 것 같은 제목이었다. 하지만 펴자마자 깜짝 놀랐다. 10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은 바로 지질학에 대한 얘기가 담겨 있었다. 인간의 역사 따위는 한 줌의 티끌과 같은 긴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저자가 20년의 세월 동안 쓴 네 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지질학에 관련된 책 중에서는 가장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질학자는 아니다. 그의 의문에서 시작된 지질학자들과의 탐험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지질학자와의 에피소드와 함께 아주 전문적인 지질학의 역사와 지식이 담겨 있었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면 내가 지질학에 들인 시간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산맥과 호수, 협곡등의 이름이 마구 등장하는 이 책을 읽는 건 반쯤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지명을 일일이 찾아보며 읽기에는 너무 많은 품이 들 것 같았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땐 언제나 빠르게 한 번 읽고 나중에 또 읽으면 된다. 이번 책은 철저하게 완독을 목표로 했다.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에는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이야기인데도 우리는 땅에 대해 꽤나 무심하고 무식한 게 아닌가 싶다. 학교 때 잠깐 배운 대륙 이동설 하나로 전체를 이해하려는 게 아니었을까?(많은 전문가들도 그런 습성이 있다) 하지만 자연은 자기 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이 어느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무의미할 지경이다. 더군다나 식물이 없었을 때의 지구는 풍화의 침식이 더욱 급격하게 일어났고 빙하기의 거대한 빙하들은 땅을 뒤섞어 버리기도 했다. 지각 이동과 침식, 풍화와 같은 일들은 지구의 수수께끼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다윈은 여러 학문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그런 다윈에게도 영감을 준 지질학자와 책이 있었다. 모든 지식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같은 과학자들이 위험에 처했던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당시에 이들의 주장은 그렇게까지 반감은 없었지만 지구의 나이가 엄청 오래되었다는 지질학의 주장에는 화들짝 놀랐던 것 같다. 창세기에 대한 의심이라는 위기감에 여러 과학에 대한 족쇄로 이어졌던 것 같다.

  사실 지질학은 꽤나 인문학적인 학문이다. 왜냐면 관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땅 아래에 있는 기록들을 인간이 조금씩 알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지질학은 추측과 상상에 의지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질학은 현장 학문이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실험실에서 혹은 위성사진을 가지고 연구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몇몇 대가들은 그곳을 눈으로 직접 보질 않고 하는 연구는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한다. 그곳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지질학을 하는 사람은 시간의 감각이 꽤나 다른 듯하다. 포유류는 보통 200만 년 동안 지속되는데 그렇게 따지만 인간의 수명이 그다지 많이 남질 않았다는 것이다. 지층의 몇 층도 되지 않은 삶을 산 인간들이 수백 년 동안 수만 년 동안 만들어진 광물을 미친 듯이 쓰는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런 광물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지질학자다.

  지금은 판 구조론이 대세다. 그것을 보통 하는 미세 판구조론도 있고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열 점도 있다. 판구조론으로 해석하지 못했던 산맥과 호수는 침식이나 빙하가 만드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핵무기가 만들어진 후, 인간은 적의 핵무기 실험을 감지하기 위해 수많은 지진 탐지기를 설치했다. 덕분에 핵실험보다 지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질학은 가이아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가이아는 카오스의 딸이다. 정말 알 수 없다. 자연은 제멋대로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은 나의 머리도 카오스다. 자연은 타협해 주지 않듯 이 책도 나에게 타협해 주질 않았다.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글자들을 읽은 기분이지만 그 속에는 분명 멋들어진 문장도 있었다. 거대한 움직임에도 분명 어떤 규칙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직접 살고 있기에 너무 복잡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이해할 순 없지만 지질학의 진수를 본 듯 한 기분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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