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이 가장 성공한 밈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밈'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나온 뒤 밈이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될 거라곤 생각이나 했을까? 유튜브나 틱톡 상에는 '밈'이라는 이름을 달고 여러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생물학적 유전을 벗어난 문화적 유전 '밈'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유쾌한 '밈'이지만 어떻게 보면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쓰면서 남겨 두었던 하나의 탈출구였던 '밈'이었다. 유전자 단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개체는 하나의 운반자로서 복제자의 충실한 종일뿐이라는 숙면론을 벗어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인간은 유전자에 유리하지 않는 일을 스스럼없이 한다. 이것은 유전자들의 각축장인 개체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과감하게도 '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나왔다. 어느 학문이든지 공격적이고 과감한 사람은 존재한다. 수전 블랙모어는 그런 면에서 <밈학>에 있어 과감함을 가진 인물이다. 밈의 개념을 만들어낸 도킨스 조차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던 밈이었기에 도킨스는 서문에서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자신이 남겨놓은 숙명론을 피해 갈 무언가였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저자는 과감하게 '밈'을 가지고 왔다. 유전자에 굴복하지 않은 행동마저도 밈에 의한 지배라는 개념으로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가 세상에 던전 돌만큼 묵직한 돌이 날아든다. 밈학은 그렇게까지 주목받고 있지 않지만 그녀가 펴고 있는 논리가 그렇게 허술해 보이진 않는다. 학계는 정말 무서운 이론이 나타나면 철저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 하나가 다윈의 <성 선택설>이다. 그런 면에서 '밈학'이 주목을 못 받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자칫 인간 숙명론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인간은 정말 운반자일 뿐일까.
밈은 철저하게 '모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모방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계념이라 무시하기 쉽지만 이것은 꽤 복잡한 메커니즘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척척 해낸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는 거울신경세포가 발견되기 전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인간에게는 상대를 모방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여러 잃어버린 고리들이 있다. 인간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지능이다. 생물학적 진화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뇌가 그중 하나다. 생존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모도 심했다. 누군가는 고기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가 커졌다고 또 누군가는 뇌가 커졌기 때문에 고기 섭취가 늘었다고 얘기한다. 돌연변이 때문에 뇌가 커졌다고 하기도 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저자는 모든 것을 '밈'으로 설명하고 있다.
농경 생활의 출발도 우리는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고 얼버무리기도 하고 우연히 마주한 밀을 먹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환경에 종속되었다고 말하는 책도 있다. 누군가 그런 일을 했을 수는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말 큰 농사라는 건 생존에 유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행동 '밈'은 이런 상황에서도 적용이 가능했다.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가 결정되는 대부분의 생물들과 달리 인간에게는 '모방' 즉 '밈'이 존재했다.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모방했다. 인기가 많은 사람을 모방했다. 밈 또한 자신을 널리 퍼트려야 하기 때문에 유전자와 공생해야 했다. 어쩌면 밈은 '성 선택'에 더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밈보다 강력한 밈이 바로 '섹스'다. 그것은 계속 세대를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콘텐츠도 가장 비싼 도메인도 섹스다. 콘텐츠가 가지는 모든 섹슈얼리티는 강력한 밈이다. 이것은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잘 팔린다. 상업적으로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밈은 번식을 하지 않으며 즐기는 방법으로 진화했다. 그 편이 밈의 입장에서는 더욱 유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 중에 또 하나가 '이타심'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복제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이타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타적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게 유리해진다면 성립하겠지만 말이다. 이타적 행동 또한 '밈'이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아 많은 유전자를 퍼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이나 훌륭함을 모방하려는 것 또한 밈이다. '입양'이라는 것도 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있게 된다.
밈은 진화를 거듭하며 자신의 영속성을 높이기 위해 '문자'를 만들어 냈다. 밈의 큰 도약이다. 말과 그림과 달리 정확성이 높아진다. 인쇄술의 발명은 정확성에 속도를 더한다. 밈은 이제 인간이라는 '운반자'가 필요 없을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철도와 배 그리고 비행기는 밈의 전개를 빠르게 한다. 월드 와이드 웹(www)은 이제 밈의 그 자체가 되었다. 유튜브와 틱톡과 같은 플랫폼은 밈이 확실히 존재 밖에 존재할 수 있게 했다.
이제 밈은 로봇과 AI로 성장했다. 인간은 그것들을 발전시키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 행동 자체가 밈의 선택이다. AI는 그 자체로 밈의 생성까지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까지 보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최고의 존엄은 바로 '자아'이며 초지능이라는 것 또한 '자아'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아와 엮이는 밈이야 말로 최강의 밈이 된다.
밈은 인간을 밈들의 생존 싸움에 밀어 넣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굳이 필요 없었을 것들을 만들어 내고 또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또 뭔가를 만들어 낸다. 유전자 조작, 기억 조작은 어떻게 보면 밈의 최종 목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함으로써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몰입한다는 것은 자아를 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명상 또한 다르지 않다. 우후죽순으로 자라는 밈을 잘라내는 시간이다. 행위는 존재하고 결과도 존재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부처의 말씀이 묵직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적게 쏟을 때 비로소 주위를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도덕성이라는 것도 어쩌면 자아를 잊고 이기적인 밈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을 두려워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생각보다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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