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총균쇠> 등과 같은 책을 읽고야 인류사에 대한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의심 없이 유발 하라리나 제널드 다이아몬드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시작된 관심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인류사를 다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많은 책들 중에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역사서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 있다.
제목과 같이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뒤 지금의 모습이 될 때까지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암울함 속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위로한다. 이제는 개인의 지식은 보잘것없이 보일 정도로 인간의 지식수준은 거대하다.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는 지금의 시대에 우리는 그저 '교육받은 무식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배워도 배워도 좌절하게 된다.
인간은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해, 미래에 대해, 세계에 대해. 그것이 인간적 상상력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나아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갔다. 그것은 멈추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하게 된다. 서방이 주도하기를 주저한다면 아시아에서 혹은 아프리카에서 다음 진보의 끈을 잡아당기게 될 것이다. 지식은 사실을 거저 헐겁게 묶어놓은 공책이 아니다. 인간이 성실하게 살아온 흔적이다. 이런 흔적이 상식이 되어 있지 않다면 다음으로의 발걸음을 잃어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미래의 상식은 오늘날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을 따라 배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진보할 수 없다. 그저 본 대로 따라 했던 유목민의 생활이나 중세 르네상스와 같이 역사의 멈춤을 겪을 뿐이다. 젊은이들의 상상력과 자유를 제한하지 않을 때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기다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욕구 충족의 연기'라고 한다. 이것은 인류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고 희망을 얘기하고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책은 초반에는 역사를 기술하는 듯 시작하지만 과학사로 이어지다 철학적으로 마무리된다. 중간중간에 예술과 문학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인류의 발전은 과학적이면서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것이다. 어느 하나 빠지면 안 된다. 저자는 이 책을 자연의 이해, 인류의 이해 그리고 자연 안에서의 인간 조건의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많은 생물들이 지구상에 출현했지만 인류만큼 독특한 생물은 없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완전한 형태로 태어나 살아간다. 자연선택된 그들은 자연의 틀에 맞춰 살아간다. 인간만이 환경에 갇혀 있지 않은 유일한 존재다.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 이외에 문화적으로도 진화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등정'인 것이다. 인간은 시도하고 연습하면서 정교해진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오히려 인간에 도움이 되었다. 협력을 해야 했고 협력에 필요한 언어를 만들어야 했다. 또한 무기를 만들었다. 지성이 있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았고 그들은 성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 인류는 그렇게 더 빠르게 진화하게 된다.
과학이 실체라면 예술은 상상력이다. 문화적 진화란 본질적으로는 상상력의 성장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함께 한다. 더 좋은 종자를 골라내고 가축을 기르면서 인간은 환경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을 넘어선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 기계가 그렇고 고대에 대형 가축들이 그러하다. 인간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쾌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잘하는 일을 하고 싶고 잘하게 되면 더 잘하고 싶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발전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른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 시점이 있어 좋았는데, '금'이라는 건 지금에야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 있지만 고대에는 불변하는(산화되지 않는) 금속이었기 때문에 좋아했다는 것이다. 왕족의 불변을 지켜줄 금속이었다. 원근법을 예술의 영역으로만 보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과학이었다. 먼 곳에 있는 물체가 반사하는 빛보다 가까운 물체가 반사하는 빛이 더 많기 때문에 더 크게 보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었다. 원근법은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 한 순간을 우리 앞에 고정시키는 기법인 것이다.
많은 인류사 책과 과학사 책을 읽어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시인의 시, 작가의 글을 가져와 비유함으로써 무료함을 달래주기도 했다. 문학과 과학은 그대로 인간의 지식의 결과물이고 그 결과가 인간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소중하다. 저자는 인류의 긴 세월을 지켜온 인류의 역사를 되짚으며 지금껏 잘해왔고 또 잘 해내갈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 되는 인류의 역사. 그 힘을 저자는 긍정적이고 즐겁게 생각하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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