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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앤드루 솔로몬) - 민음사

야곰야곰+책벌레 2023. 10. 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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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업무로 엄청 힘든 시절이 있었다. 중국 땅에서 이틀에 한 번씩 퇴근을 하며 힘겹게 버티다가 그만두었다. 육체적 힘듦 보다 회사의 꽉 막힘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실망이 컸다. 그래서 떠났다. 퇴사 날짜를 받아두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정리했다. 그리고 우연히 생각난 TED와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난 동영상은 많은 힘이 되었다.

<우리 삶의 최악의 순간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방법>의 제목으로 시작된 앤드루 솔로몬의 강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처럼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삶에 있어 최악의 경험을 한 이들이 버티고 견디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결국 또 우리를 만들어 낸다는 그의 말에는 깊은 감동이 있었다.

  그때까지 그의 경력은 약간 특별했다. 양성애주의자며 남자와 결혼했으며 학창 시절 남자답지 못하다고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 소수성애자를 위한 운동을 넘어 장애인과 우리 사회에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경험은 그의 행동에 비해 특별하진 않았다. 그를 좀 더 알 고 싶어 책을 찾아봤다. 그의 저서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아빠이면서 엄마인 동성애자가 썼다기엔 호평이 많아서 궁금해 오래전 사두었지만 읽어보진 못했다 (무려 벽돌책 2권 분량) 그리고 도무지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았던 <한낮의 우울>을 수많은 물음표를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면 분명 <우울에 대한 모든 것>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목은 <한낮의 악마>다. 우울증은 아름답고 기분 좋은 날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어두울 때보다 밝을 때 갑자기 덮친다. 제목에 딱 맞는 병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힘든 병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우울증이라는 게 이렇게 심각한 질병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중세의 종교들은 우울증을 하나의 죄악으로 만들어 버렸고 정신병이라는 것은 하나의 낙인이 되었다. 마음의 병은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냥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다. 자신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것을 공개하는 것은 굉장히 불리한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우울증은 사회에 만연해 있으면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울증이라는 것의 정보도 편협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우울증은 하나의 병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이제 겨우 중세의 흔적을 지우는 인식 수준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마음의 병은 나약한 자신의 인정이라 여겨지고 있어 약물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혈압이면 당연하게 혈압약을 먹고 열이 오르면 항생제를 먹듯 우울증에 빠져들면 항우울제가 필요한 시기가 오는 것이다.

  우울증의 초기에는 사랑이 큰 힘이 되지만 중증으로 들어서면 사랑 또한 아무 도움이 되질 않는다. 결국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약물 치료라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선뜻 이용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사회적 낙인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항우울제는 2주 이상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 사이 주위의 관심, 사회적 보호 장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책의 저자인 앤드루 솔로몬 역시 3번의 우울증 삽화를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주치의와 함께 약물에 중독되지 않도록 약을 선정하고 심리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잠에 관해서는 철저히 지키려고 한다. 그가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도 그것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떠나기도 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용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각 문화에서 행해지는 치료법도 겪어 봤다. 우울증은 약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결국 마음의 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식, 종교적 믿음 그리고 자신감과 오만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마저 붕괴되어 버리는 이 질병에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결국 외로운 병이며 그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가난한 사람의 우울은 빈곤과 구별하게 어려운 점이 있다. 동성애자는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커밍아웃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우울증을 앓는다는 것 자체를 얘기해도 고립된다. 우리는 자신이 우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병리학적으로 간단하다는 고혈압의 원인도 200가지에 달한다. 우리 뇌에 관련된 이 질병의 원인은 도대체 알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얘기하고 나눌 때 더 빨리 원인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나마 약물치료, 전기치료, 뇌 수술 등으로 호전될 수 있다. 방법이 있다면 써보는 것이 어떨까? 

  우울증을 나약한 존재의 병으로 보는 것은 결국 우생학의 시선이다. 우울즐은 DNA와 호르몬에 영향을 받고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산모 우울증은 호르몬의 영향과 사회 구조의 변화 때문이지 산모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 행복의 형틀을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질병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의사가 아닌 우울증을 겪은 환자의 입장에서 쓰인 이 책은 우울증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 현실적인 시선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지옥 같은 삶 또한 자신의 인생의 일부였다고 말할 수 있는 앤드루 솔로몬의 자세에 감동받았고 그의 TED 강의 제목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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