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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의 프랑스 (이상빈) - 아트제

야곰야곰+책벌레 2023. 9. 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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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페이지의 두툼한 책에 '나의 프랑스'라는 제목이 붙었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너무 두껍고 프랑스 관련 서적이라기 하기에는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녹아 있다. 저자가 어떤 분류로 거부했지만 책은 '인문'으로 분류되어 있다. 사실 나는 에세이로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저자가 꽤 오랜 시간 프랑스라는 나라를 보고 느끼며 작성한 기록이라는 설명이 딱 어울린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 번역위원장을 역임했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 프랑스에 대한 단순한 나열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프랑스라는 나라의 사회, 문화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아트제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100가지 주에 대한 100개의 칼럼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프랑스라는 나라를 여행하면 단순히 열거하는 것도 아니면서 유구한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직접 보고 느낌을 것을 기록하는 것들이어서 시점은 현재에 있지만 그 고찰은 세대를 넘나 든다. <르몽드>에서 일해서인지 프랑스에 한국을 투영해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도 공유한다.

  나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음악, 식도락, 영화, 여행 같은 곳보다 초반에 등장하는 문화, 사회, 세계와 같은 파트가 좋았다. 책을 읽는다는 느낌을 넘어 신문을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좋았다. 

  문화 강국 프랑스는 나라 자체로 이미 엄청난 콘텐츠를 가진 나라이다. 문화는 모든 국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문화 민주주의'를 만들 가고 있다. 무료이거나 저가인 공연도 많으며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비싸서 관람하기 부담스러운 공연에도 저렴한 좌석이 있다. 물론 자리가 좋지는 않지만 적어도 공연장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럽게 만들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문화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몫이지만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언어주의 유럽을 얘기하는 부분도 좋았다. 유럽은 EU로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타 언어를 모른다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지만, 언어를 안다고 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에 유럽의 다양성은 중요하다. 오히려 하나의 언어를 쓰게 된다는 것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전체주의 사회와 별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유럽은 언어 다양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크세주 문고'에 대한 얘기는 눈에 띈다. '모든 대답에 하나의 질문'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이 문고 시리즈는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의미한다. 1941년부터 현재까지 4,000종 이상이 출간되었다. 모든 분야를 망라한 하나의 방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형태도 분량도 가격도 동일하다. 

  일단 편을 나누면 상대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프랑스는 대담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지식인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적어도 사회적 신분이 높다면 세상사에 대해 일정한 수준의 격조와 논리를 가지기를 요구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이 그들의 교육의 효과일 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는 파업 또한 잦다. 프랑스 광장의 도로가 엄청 넓은 것은 플래카드를 걸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엄청 불편할 텐데도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면 기꺼이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 그래야 우리가 옳은 주장을 할 때 그들도 우리를 지지해 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읽은 '분노하라'의 저자 에셀 또한 프랑스인을 생각해 보면 <저항>이 프랑스인에게는 내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또 재밌는 부분은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었다.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1. 외국어 하나 정도는 잘할 수 있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할 수 있고 5. 공부에 의연히 참여하며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 등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기준을 정하는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중산층 기준에는 '사회 약자에 대한 연대' 정신이 필수인 것이 눈에 띈다. 동시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대해 헌신한 사람들이 순위에 들어 있다. 우리처럼 '왕'들이 있지는 않다.

  책은 프랑스의 자랑과 같은 역사와 혁명 그리고 수많은 문인들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문화를 어떻게 아끼고 즐기는지도 알고 있는 듯하다. 세계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동안에도 프랑스는 무심한 듯하다. 프랑스 국적의 전자제품 기업이 하나 정도랄까. 그들은 급변하는 세계에서도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느리다는 건 더 자세히 보기 위함이고 더 진지하게 대하고 있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속도 경쟁에 헤어날 수 없는 우리에게는 조금 부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세계 속의 한국 문화가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일만 잘하는 아시아인이 아닌 멋진 문화 민족으로 알려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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