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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혁명 : 독일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 (전진성) - 책세상

야곰야곰+책벌레 2023. 9. 1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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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혁명은 1, 2차 세계대전과 엮여 있어 꽤나 중요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독일혁명이 제대로만 되었다면 히틀러도 스탈린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는 지금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끔찍했던 세계 1차 대전은 기존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이었다. 호언장담하며 참전한 독일은 결국 패전국이 되었다. 전쟁은 노동자 179만 명을 죽였고 75만 명을 아사시켰다. 봉기, 파업, 반란이 나라를 뒤덮었던 독일은 자본주의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어고 더불어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독일 혁명의 성공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과도 닿아 있었고 수많은 러시아 노동자들은 독일 혁명에 열광했다. 하지만 범인류적 보편성을 얘기하는 지식인 대부분은 하나의 카르텔이었고 그들은 안정된 사회를 원할 뿐이었다. 지식인들로 이뤄져 있던 보수가 어떻게 사회 변화에 대해 몸부림에는 웃픈 비약이 존재했다. 보수혁명이라고 불리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은 세상의 변화에 그저 떠내려간 듯한 느낌도 든다.

  세상이 근대화되면서 사회는 분열되었고 보수가 바라는 '안정'과도 멀어지는 듯했다. 모순되게도 이런 근대화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지식인이 불러왔다. 보수는 연대 우위를 추구했지만 이 연대는 오로지 지식들만의 것이었다. 보수 혁명은 '역사적 진보'를 위한 혁명이 아니라 '역사적 진보'를 극복하기 위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와 혁명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1914년 독일이 참전하기로 결정한 사건은 보수에게는 '유대'를 발견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형제애, 공동체 의식, 인간성, 희생과 같은 객관적 정신의 등장이었다. 전장에서 생사를 나눈 끈끈한 동지애는 이후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참혹했고 이상 실현에 대한 무력감만 느끼게 했다. 그 속에서 폭력과 파괴를 겁내지 않는 정신 자세를 강종하게 된다. "영웅적 현실주의"의 등장이다. 근대성을 비난했던 보수는 근대 기술의 현실성에 주목하게 된다. 보수 혁명은 근대성을 인정하면서도 혐오하는 모순적인 것이었다.

  청년기를 전장에서 보낸 이들의 가치관에는 위계 조직과 투쟁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정치적 행위의 결정 요소를 민주적 토론이나 합의에 두지 않고 오직 정치적 책임자의 임의적 결단에서 찾는 결단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사이 독일은 전쟁에서 패했고 의회 민주주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영토도 잃고 패전국의 배상금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보수는 이 책임을 공화국에게 넘겼고 '서구적인' 것에 대항하며 민족공동체라는 이념을 만들어갔다. 어쩌면 자신의 이념을 잃은 보수는 과거와 급격한 단절을 시도하며 좌파보다 더 급진적으로 '혁명' 속으로 들어갔다.

  자본주의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깊은 적대감은 대공황을 기점으로 폭발한 듯하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의 과도화를 통한 민족공동체 파괴라고 보게 된 것이다. 민족혁명가들은 '총동원'을 추구하는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우파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달랐으며 파시즘이라고 하기엔 논란이 있지만 민족사회주의(나치)와 유사했다. 보수의 급진적 개혁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 버린 게 아닐까 싶다. 

  나치 시기의 보수 혁명론자들은 수혜자가 아니었다. 나치를 거부한 사람은 박해를 받았고 지지했던 이들도 결국엔 숙청당했다. 나치에게는 오로지 '기술적 이성'만이 필요했다. '비판적 이성'을 가진 불만투성이 지식인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피해자가 된 보수는 냉전시대에 들어서면서 회생한다. 공산주의를 주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가능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 사회에서 지식인이라는 건 이제 주목받지 못한다. 지식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대는 이제 영원히 종지부를 찍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 이 책은 역사를 더듬어 현재의 정치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역사학자로서 무덤덤하게 역사를 짚을 뿐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말없는 고인의 시체를 주어 모아 이들을 자신의 역사 서술의 무대 위에 등장시키는 일을 할 뿐인 것이다.

  다음은 로자 룩셈부르크로 가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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