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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 - 책읽는수요일

야곰야곰+책벌레 2023. 8. 3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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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을 시작하려 빈 종이, 새하얀 모니터 앞에 있다면 그 사람은 작가를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첫 작품에 도전하는 사람도 베스트셀러를 냈던 작가도 모두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작가라는 것은 시작의 반복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작가를 입문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닌 글을 쓰고 있는 모두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라는 직업은 늘 두려움과 함께 하는 사람이다. 마치 대중 앞에 나체로 서 있는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픽션 작가라면 조금은 더 괜찮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신의 것을 모두 내어 보인다는 점에서는 같은 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끄러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적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출판하는 것 또한 낯 뜨거운 일이 된다. 지인들에게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 손가락질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쓰고 또 쓴다. 

  독자는 작가를 위해 시간과 돈을 내어 주는 사람이다. 독자는 우리의 가장 친밀한 사람과 같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독자가 글을 읽는 것은 글을 통해서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싶기 때문이고 혹시 같은 상황을 이겨낸 사람으로부터 용기와 방법을 얻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작가는 진실되게 글을 써야 한다.

  작가가 글을 쓰기를 미루는 것은 회사원이 출근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완벽한 글쓰기를 위한 준비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던 작가는 되려 자신만의 공간이 생겼을 때 더 많이 못쓰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글을 쓰는 시간을 악착같이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내키든 내키지 않든 자리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 한 단어를 쓰던 한 페이지를 쓰던 자리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 

  많은 상을 받은 작가들 마저도 자신의 글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글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되려 주위의 근거 없는 호평에 취하는 경우는 위험하다. 작가는 부족한 자신의 글과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읽을만한 것이 아니라고 쓰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세상에 발표하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글에 대한 두려움을 만났을 때 '출판 안 할 건데..'라는 편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임했다고 한다. 가수 스텔라 장도 음악에 대한 공포가 왔을 때 '발매하지 않을 거야'라며 말하며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 그냥 쓰자. 종이에 적었다면 비밀 상자에 넣어두면 되고 파일로 적었다면 어디 잘 쓰지 않는 클라이드에 짱박아 두면 되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것이 픽션이라고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 작가는 늘 써서 얻는 것과 써지 않아 잃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명예나 금전적인 것이라면 괴로움을 사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 그렇게 잘 팔리는 글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신화로 만드는 작업이다. 글을 쓰는 일이 신성하다고 느껴지지 않더라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작가라는 직업은 계속 쓸 수 있어야 유효하다. 작가로 머물러 있으려면 계속 글을 써야 할 뿐이다.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릴 수 있을 만큼의 특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글 쓰는 사람들의 종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점일지도 모른다. 창작의 벽에 막혀 있을 때도 쓰고 또 써서 이겨내는 것이 작가다. 긴 터널을 손전등 하나로 건너는 것처럼 막막하고 두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글 속에 자신을 속박함으로써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진정 작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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