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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간 이후의 철학 (시노하라 마사타케) - 이비

야곰야곰+책벌레 2023. 10. 1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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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세는 보통 핵실험이 실시된 1945년을 시작점으로 본다. 방사능,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 그리고 무문별 하게 늘어난 사육. 수 만년, 아니 수 십만 년의 역사를 압축해 놓은 변화. 인간은 그렇게 지구 위를 주도하고 있다. 지구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만 인간만이 분주하다. 그리고 그만큼 빠르게 소멸과 마주하게 된다.

  세계의 종말은 인류세의 종말을 의미한다. 인간이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연의 거대함을 다시 느끼고 그 속에서 살아감을 느낀다. 인간에게 집중했던 철학을 다시 자연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인간 이후의 철학은 어떨까? 이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세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의 감각이 닿아 있는 장소. 인간이 사물을 억압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의 감각이 닿은 곳을 인지하고 그곳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를 만들고 인간이 살아가는 장소를 만든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것이 영원할 거란 착각을 하며 산다. 

  하지만 인간은 감각보다 더 좁은 의미를 인지할 수밖에 없다. 인류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을 인지할 뿐인가. 감각적으로 느껴지만 관심에서 두지 않는 것도 많다. 눈으로 바라볼 때 보다 카메라로 찍었을 때 더 많은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김각이라는 것은 디지털 데이터 양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은 마치 자신이 세상을 조율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자연. 범 행성적인 혹은 우주적인 공간은 늘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인간의 자신만의 유니버스 안에 갇혀 있다. 기술과 문화의 발전은 인간을 자연 속 인간의 위치를 왜곡했다. 인간은 스스로만의 생태계를 만들어 동족 경쟁을 시작했다. 그 사이 무분별한 결과물이 쏟아졌고 그것은 인간의 관심을 벗어나 자연과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다.

  인간에 만들어 놓은 굳건한 세상에서도 자연은 한 번씩 그 존재감을 보여왔다. 때론 지진으로 때론 태풍으로 말이다. 인류는 인간 한계를 넘어선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러면서도 잠깐의 슬픔과 함께 잊힌다. 전쟁과 질병과 같은 것이 덮쳐도 결국 이겨낼 거라 믿는다. 쓰나미가 덮치면 더 높은 방파제를 만들지만 그 방파제의 높이는 결국 인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밸런스를 조절하는 행성적인 피드백은 그보다 높은 쓰나미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핵과 기후 위기 그리고 넓어져 가는 열대, 녹아내리는 동토. 언제 어떤 재해나 바이러스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이 되어 간다. 우주적 환경에서 지구로 덮칠 더 큰 재앙 또한 알 수 없다. 인류는 지구를 걱정하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 유니버스'에 대한 걱정이며, 세계의 종말은 인간이 구축해 놓은 존재의 흩어짐이고 사물들의 해방이다. 인간이 관심이 두지 않는 곳에 더 큰 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소멸을 통해서만 그것이 이뤄진다. 소멸은 사라짐이 아닌 인간의 관심이 사라짐을 얘기한다. 그곳에서 사물은 인간이 이름 지은 족쇄를 벗어난다.

  인류세가 시작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지점에서 벌써 종말을 얘기한다. 지구의 온도 섭씨 6도가 올라가면 세상은 절망한다고 한다. 환경보호라고 하는 일들이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게 대부분이다. 모든 일은 소위 경제를 유지하는 일뿐 환경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경제의 붕괴, 금융의 붕괴 그리고 생태의 붕괴. 어쩌면 소멸은 인간이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인간 이후의 세계에 인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멸종에 대한 얘기보다 인류세의 종말을 얘기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인간은 겸허하게 자연 속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인간을 넘어선 시스템에 대해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 이후를 생각하는 현대 철학의 방향이다. 언제까지 인간 중심의 철학에만 관심을 둘 순 없는 것이다.

  집안으로 날아든 좁쌀만 한 벌레에도 난리가 나는 상황, 태풍이 몰려와도 아무렇지 않은 상황을 보면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인류세 속에서 경쟁하듯 살아가니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코드화된 인간의 것만이 시끄럽다. 지금의 위태로움은 우리의 문제가 아닌 인간 이외의 것들과 관련된 문제다. 

  중요한 것은 세계는 인간이 있든 없든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우주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함을 넘어 우주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인간이 여기서 산다는 사실이 왜 중요하며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 고민할 때다. '너 자신의 알라'의 인류세 전체를 꿰뚫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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