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은 작가로서는 받을 수 있는 영예로운 상이다. 노벨상은 특정 작품에 상을 수여하지 않고 특정 인물에 수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가 살아온 삶과 작품들을 모두 평가한 뒤 결정한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작가가 받을 가능성도 높다. 위대한 작가가 세상을 등지기 전에 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 자체로도 우리에게는 흥미로운 일이지만 노벨상 수상 연설은 백미라고 할 수 있고 특히 글을 쓰는 작가들의 연설은 한 편의 책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수려하다. 드문드문 연설문을 접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일일이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수상 연설문에는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집필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세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글을 적는 것은 활동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철저하게 개인 속에 고립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각자의 철학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글 쓰는 것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라면 그런 치열함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공통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책의 제목은 오르한 파묵의 수상 연설 제목을 가져다 썼다.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연설이기도 했고 역시 전담 역자인 이난아 역자의 해설은 찰떡이었다. 평론 같은 느낌의 다른 해설과 다르게 이난아 역자의 글만이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묵의 아버지는 부유한 할아버지의 재산으로 즐거운 삶을 선택했다. 그는 늘 여행을 떠났고 그의 손에는 여행가방이 쥐어져 있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까. 문득 찾아온 아버지가 전해준 당신의 여행가방. 그 안에 쓸만한 글이 있는지 나중에 죽고 나면 한번 봐달라고 했던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여는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의 글에서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자신만큼 진지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글이 더 좋다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작가는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글 쓰는 것에 얼마나 큰 각오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가오싱젠의 글의 진지함에 파묵의 이야기가 살짝 묻혔다. 덩샤오핑이 문화혁명을 주도하면서 문학의 자유를 박탈당한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중국어로 글을 쓰고 중국말로 수상 연설을 했다. 그가 문학은 정치적이지도 않아야 하며 자신의 문화에 젖어 있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문학이 자칫하면 권력의 장식품이 되어버리는 것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와 독자는 정신적인 고류를 하는 관계로 작품을 통해서만 소통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시대의 문학은 정치과 관습의 압박에 시달렸다면 지금의 시대의 문학은 상품 가치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외롭지만 기꺼이 감수해야 하고 어려운 생계 또한 도모할 수밖에 없다. 사회가 압살 하지 못하게 스스로를 구제하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보충이어야 한다.
가오싱젠의 강인함은 주제 사라마구의 연설문에서 녹아 버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연설문은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낀 할아버지가 화초와 나무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부분에서 심장을 저격했다. 갑자기 울컥했다. 역사가 역사라고 불릴만한 게 못되던 시절에는 그저 현실이었다는 그 말이 좋았다. 문학 또한 역사다. 역사만큼 완벽한 서사를 가진 문학도 없다. 서로 일맥상통하는 거 아닐까?
이 훌륭한 연설문 중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연설은 따뜻한 듯 뜨겁다. 일본의 과오를 뉘우치고 연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다. 그는 또 한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라를 비판하며 연설문을 시작한다. <아름다운 일본의 나>라는 제목의 가와바타의 연설문 제목을 꼬집으며 지금의 일본이 아름답다 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서구만 좇았던 일본은 어느새 아시아에서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질러 버렸고 지금은 정치적으로나 사회,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버렸음을 얘기한다. 전후 작가들은 일본의 잘못에 대해 속죄하고 화해의 길을 찾아보려 노력했고 자신 또한 그 뒤를 이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스승 와타나베 가즈오를 언급하며 예의 바른 사람으로서의 일본인을 위한 노력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가와바타가 세계는 알지 못하는 일본 문화만을 언급하며 수상 연설을 한 것은 '고립'이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문학의 세계성은 '유대'부터 성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를 통해 표현자와 수용자 모두가 개인과 시대의 아픔으로부터 치유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사회에서 글을 써 온 작가들의 다름과 그 속에서 문학이라는 것으로 자신 혹은 약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이들의 닮음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사두고 아직 펴지 못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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