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가 있는 에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각에 글을 더하는 그런 글들이 남겨져 있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다 방이 열 개 달린 집을 가지고 있다고 하길래 내심 부러웠다. 부자라서 취미로 글을 쓰나라는 잠깐의 오해를 뒤로하고 그건 마음의 방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불안은 문전박대할수록 문을 더 심하게 두드린다. 그저 방한칸 내어주면 조용하다. 그렇다고 나머지 아홉 개의 방이 불안해지는 건 아니니까. 책은 그런 저자의 생각을 담아내는 곳이고 이 책은 에세이다.
작가사 살며 보며 느끼며 때로는 비틀어 생각하는 이 글은 케이시 작가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마냥 작가로고만 생각했던 저자는 어떻게 보면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두 번의 스타트업을 실패하고도 자신에게 투자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글이 풍기는 삐딱함은 자신만의 경계를 긋고 있는 저자만의 자기 보호의 영역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까칠하지만 위로하는 글이라고 할까. 그건 독자에도 저자에게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경험은 사실 도움이 되는 것이고 성공은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다. 끝이라고 생각될 때 때론 끝이 아니지만 그래도 끝까지 견뎌내는 건 중요하다. 스스로 실패라고 정의할 때까지 유보라고 생각하는 나와 비슷하달까. 힘들다는 건 힘을 들이고 있는 중이고 인생은 언제나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를 오간다. 행복은 다정한 것에서부터 오지만 영감은 쓰레기로부터 온다. 부끄러움이 나의 몫이라는 건 사실 나만 신경 쓰고 있다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내 삶은 내가 정하는 것이며 내가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 몸도 마음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하는 건 다 부질없는 짓이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집중하던 일에서 잠시 눈을 떼어 보자. 훌륭한 사람들은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었고 아이디어는 오가며 발에 치이는 전단지 속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불안하고 두려운 시대일수록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 미래의 자산을 현재에 끌어다가 투자해야 한다. 그건 국가의 행위이면서 개인의 행위다. 불안하면 자신에게 투자해서 계발해야 한다. 미래에서 끌어다 쓴 것보다 더 많이 벌 수 있길. 오타쿠처럼 뭔가에 미쳐 즐거운 삶을 살다 보면 어느새 장인이 되어 있을지도.
어떤 일이든 초보자는 힘이 들어가고 고수가 되면 자연스럽다. 그건 운동이든 연기든 글이든 모두 같다. 자연스럽게 잘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 욕심을 내려둬야 한다. 자연스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 오래 잘하기 위해서는 힘을 줘선 안된다. 다칠 뿐이다. 아는 길도 물어가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는 것이다. 많은 길을 다녀보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것을 알게 되면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초조하진 않다. 길을 찾는 것에도 힘을 뺄 필요가 있다.
속도와 경쟁은 언제나 마음속의 나와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늘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내가 더 잘하는 것보단 내가 더 뒤처진 것을 살핀다. 강점을 더 강하게 하면 날카로워지지만 단점을 채우기만 하면 그냥 무난하게 된다. 사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빈틈없이 채우는 게 얼마나 힘들까. 약점을 인정하고 그냥 외길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살다가 길이 아닌 것 같으면 만들던지 돌아가던지 하면 된다.
어쩌면 긴 여행의 시간.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즐겁게 살았다는 건 꽤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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