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여행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막혀버린 입출국에 여행은커녕 업무로 해외를 나가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자 발급을 아예 해주질 않은 곳도 있고 발급받더라도 그 절차는 복잡했다. 입출국 시 수시로 코를 파고드는 면봉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그런 시절에 작가는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여행을 부탁해'라는 여행 업체의 사장님의 부탁으로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직원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다시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게 감사하다며 직원의 책을 홍보하고 싶다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사장님이 만든 작은 감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이 홀연단신으로 세계여행을 나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몇 년 동안 다니고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나에겐 여전히 불안한 곳임에 비하면 저자의 세계 여행 코스는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치안이 열악하기로 소문난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지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싶다. 아무리 여행을 좋아한다고 해도 나처럼 방구석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겐 그저 딴 나라 이야기 같다.
다른 여행 안내서와 달리 에세이 북이다. 사실 처음 받을 때엔 가이드 북일 거라 생각했는데 책에는 세계 곳곳의 명소보다는 그곳을 지나는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다. 사기꾼과 강도와 만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덜컹거렸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장면에서는 신기하기도 했다. 저자의 친화력이 좋은 건지, 여행자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이 좋은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 사기를 당하거나 강도를 당하면 마음을 열기 쉽지 않을 텐데 이내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에서 저자는 분명 초긍정주의자임이 틀림없음을 생각하곤 했다.
세계 여행 에세이는 사실 보기 쉽지 않은 글이라 희소성이 있다. 1330일을 한 권에 함축해 놓다 보니 장면 전화이 빠르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기도 했다. 세렝게티 초원은 꼭 가보고 싶긴 했는데 아프리카라는 곳도 잘 준비하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누군 배낭 하나 매고 갔는데 말이다.
여행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을지 궁금했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현지를 적응하며 이동하는 모습에는 대단함이 느껴졌다. 여행은 여행지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관통하고 지나간 자신만의 무언가 중요하다. 함께 했던 사람들과 그곳에서의 에피소드들 속에 보관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 이야기는 재밌게 보는 편이다. 그야말로 방구석 여행자다. 그럼에도 저자와 함께 세계를 돌아본 느낌이다. 여행 책에서 흔히 보는 명소의 위대함이 아닌 저자의 여행 그 자체를 전달받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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