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서야 모텔은 하나의 숙박시설로 인정받고 있지만 예전엔 그렇게 고운 시선으로 보질 않았다. 모텔은 여관이나 여인숙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모텔 하면 불륜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지방도로가 닿은 어느 한적한 고갯길에 있는 모텔이 장사가 잘된다는 우스갯소리도 그 덕분일 거다.
그동안 사회는 참 많이 변했고 개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개방적이게 되면서 그저 무덤덤하게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모텔을 이용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는 혼자 가면 모텔에 잘 가질 않는다. 되려 찜질방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나를 보면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 않을까 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7년 차 모텔 운영을 하고 있는 백은정 작가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보면 모텔이라는 것을 조금 더 밝은 곳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모두가 뒤로만 얘기할 법한 얘기를 당당히 함으로써 재미와 함께 사람의 배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곳에는 생각한 대로 사랑도 있고 욕망도 있다. 모텔을 이용하는 이들의 사연도 있고 모텔을 경영하는 이의 사연도 있다. 그리고 진상 손님도 있다. 별점은 손님도 받아야 하는 게 맞지. 돈을 낸다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유형 별 진상 손님을 만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에세이이면서도 초단편선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아마 사이사이 있는 사연들 덕분 일 것이다.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완벽한 서사라고 하지 않나. 그들의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공감도 하게 만들지만 무엇보다 윤리나 도덕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사랑과 불륜이 과연 그 사람만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 사람만의 것이라고 외면할 것인가. 관계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영자의 시선이 괴로워 보이긴 했지만 그저 담담하게 그려내는 게 좋았다.
모텔을 이용하는 군상을 표현한 것과 함께 모텔을 운영하는 그 자체에 대한 얘기도 좋았다. 자주 접하지 못하는 직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은데 쉴 틈 없이 바쁜 자영업자의 모습. 일방적인 미성년자 보호법의 실태 등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과의 아슬아슬한 대립에서 주인장을 걱정하게 되기도 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귀천이 있고 35개의 객실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여도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까지 드러낼 수 있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것들을 책을 통해 알아가게 되고 그렇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사연을 품고 들러는 모텔이라는 곳의 에피소드는 그 사연을 뒷면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직업의 이야기를 풀어내 주어 더욱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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