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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 을유문화사

야곰야곰+책벌레 2023. 7. 2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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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세 가지 방향으로 읽힐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과학철학서로 그리고 생명 공학 입문자에게는 방향성을 그리고 전문가에는 강렬한 이론서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었다. 굉장히 어려운 내용 같지만 그렇게 어렵게 읽히지 않는 것은 아는 만큼 읽힐 수 있도록 잘 쓰인 문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원작도 좋았겠지만 번역에도 분명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뽑은 난도가 높은 책 중에 하나인 이 책은 처음부터 매력적이었다. '일단 붙들면 밤을 지새울 것이다'라고 말한 최재천 교수의 말이 실감 났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도입부터 강한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개정판임에도 수정하지 않겠다는 그 태도의 원천이 멋있었다. 그리고 100페이지 달하는 해석을 달며 이를 보충했다.

  내가 그동안 읽은 책과 이 책 중 어느 것이 먼저 나왔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최근에 읽은 책 대부분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학계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마치 그동안의 독서를 정리하는 기분마저 든다. '맞아. 이거 나 본거야'라는 내적 희열은 덤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얘기하는 걸 내가 이해하고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타성>에 박수를 보낸다. 철학자들이 'unselfish'를 사랑하고 인류는 성선설이기라는 단서를 좋아한다. 인간의 존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혹은 인간의 창조주를 믿는 이들에게 'The selfish'는 눈앞의 가시와 같다. 인간이라는 '존엄한' 개체를 갈기갈기 찢어서 '복제하는 것'의 목적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믿을만한 것이어도 믿고 싶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강렬한 제목은 많은 반발을 일으켰지만 그만큼 성공하게 만들었다.

  도킨스는 '회의론자'는 맞지만 '숙명론자'이거나 '환원주의자' 같지는 않은 듯했다. 책은 제목만큼 강렬한 내용은 담고 있지만 유전자가 전부다라고 얘기하고 있지도 않았다. 대신에 우리가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동물의 행동들을 설명해 내는 모습에 감탄을 하게 되는 일이 더 많았다.

  모든 유전자는 자신의 복제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은 첫 번째 유기물이 지구상에 출현했을 때부터 지속된 하나의 현상이다. 모든 것은 선택받기 유리하도록 진화되거나 선택받은 복제자만이 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개체라는 것은 하나의 유전자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46권의 유전자 다발로 이뤄진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는 조금 튀는 아이도 있고 조용한 아이도 있다. 때론 그저 금수저 유전자(쓸데도 없는데 따라다니는 유전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유전자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울 상대를 찾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이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도마저도 복제자 단위로 생각하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이 든 애벌레를 내다 버리는 위생적인 벌이 있다고 치자. 우리는 종족을 위해 그런 일을 기꺼이 해내는 벌의 이타성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병든 애벌레의 뚜껑을 좋아하는 벌과 애벌레를 내다 버리기를 좋아하는 벌의 합작품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행동들은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선택과 번식을 위한 성 선택을 받아야 한다. 필요도 없는 꼬리를 기꺼이 달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그런 걸 달고 있어도 번식할 수 있다는 '핸디캡'을 보여준다 거나 포식자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며 펄떡펄떡 뛰는 가젤은 자신은 누구보다 건강하니 나를 목표로 삼지 말라고 포식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론으로는 대부분의 것이 설명이 되었다. 유전자는 개체의 형질과 행동을 바꿀 뿐 아니라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달팽이 껍데기에 붙어사는 균은 달팽이 껍데기를 더 두껍게 한다. 곤충의 애벌레에 기생하는 균은 호르몬을 조절하여 번데기가 되지 못하게 만든다. 생식을 못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유전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는 유전자 외의 환경을 조작해야 한다. 도킨스는 이를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말했다. <이기적 유전자>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의 저서 <확장된 표현형>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기적 유전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암컷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포식자의 눈에 띄는 행동이나 핸디캡을 가지는 편이지만 인간은 여성이 더 화려한 편이다. 더불어 인간은 기꺼이 피임을 하며 복제자의 복제를 막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복제 메커니즘인 '밈'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밈은 '문화 복제'라고 얘기해도 될 듯하다. 수 만년이 걸리는 유전자의 자연선택은 더 빠른 변화가 필요했고 이는 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전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복제 방법인건지도 모른다.

  밈은 그 자체로 유전자와 동일한 복제자이지만 자신과 유사도가 가장 유전자를 위해 확률적으로 움직이지만 밈은 존재 그 자체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개체 입장을 넘어 유전자에게도 솔깃한 제안이 아닐까 싶다. 아인슈타인, 다빈치, 피카소 등은 이미 그 자체로 불멸의 복제자가 되어 인류의 문명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가진 유사도 100%의 자신이 복제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책을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도킨스도 언급했듯 유전자가 그런 경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지 수학공식처럼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생물이라는 것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향성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위해 <이기적 유전자>는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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