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과 망치가 너무 잘 어울리는 니체는 그 격정적인 감각만큼 사랑에 대해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니체의 사랑에 대한 글을 모아둔 잠언집이 바로 이 책이다. 모든 것은 개인의 해석이며 그것 또한 개인의 책임이라며 주장하는 니체는 사회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하나가 되길 강조하는 사회에 맞서 '책임감 있는 개인'을 사회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덩어리는 깨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그것이 삶을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실로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 했다. 그런 니체의 사랑은 어떨까?
빨간 망치만큼 강렬한 그의 사랑 얘기는 세창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루 살로메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져 버린 니체. 그녀는 비범했고 관습에 저항하는 지성이었다. 둘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한동안은 친구로 지냈다. 오빠를 철저하게 이용한 여동생 엘리자베트는 둘의 사랑도 방해했다. 적어도 두 명의 여성에게 청혼을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책은 강렬한 빨강으로 시작해서 글귀가 있는 오른편은 하얀색이었지만 왼쪽은 약간 붉은빛이 도는 빨강이었다. 아주 세심한 편집. 빨강에 물든 하양은 다시는 하양이 될 수 없는..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그만큼 니체가 말하는 사랑은 강렬하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사랑은 자신을 기만하고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경지니까. 사랑은 좋은 것만 바라보게 되는 오판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랑은 갈망이다.
사랑. 그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 미묘한 것에 대해 니체는 단순히 정의하지 말라는 듯 이렇게 많은 글귀를 내보였을까? 사랑과 관련된 많은 단어로부터 사랑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모은 울리히 베어는 한 문장씩 음미할 것을 권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 도덕적으로 통용되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랑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그럴 것이다. 사랑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은 것이니까. 격정적인 사랑으로부터 차가운 애증까지 모든 것이 사랑이다. 소유와 존중의 사이를 채우는 것 또한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경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니체는 친구 같은 동반자가 좋았던 것 같다. 좋은 결혼 생활이란 우정을 쌓을 줄 아는 재능에 달려 있다고 얘기했으니까. 그 시절도 지금의 시절도 꽤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이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은 마치 훌륭한 양각화를 맨손으로 자꾸 만지는 것과 같다 했다. 자꾸 만지게 되면 훌륭한 작품은 닳아 형편없고 더러운 종이가 되어 버리게 된다. 그렇게 사랑했던 작품은 혐오의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있는 줄도 모르게 된다. 너무 친밀한 교제는 항상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인간 사이에는 산들바람이 불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사랑할 때보다 두려워할 때 상대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문장을 아내에게 읽어주며 웃었다. 잘못 파악하게 되면 위험과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때문이다. '뭐어~?'라고 반응하길래 등에 누워 있던 아들에게 '중요한 거야'라고 얘기해 줬다.
굉장히 빠르게 읽어나갔지만 나중에 사랑에 관한 글을 쓴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책장에 고이 꼽아 두었다. 한 문장으로 니체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사랑만큼 끝나지 않는 이야기도 드물고 그 인기 또한 식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사랑을 니체의 글로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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