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치며 각자의 방식대로 진화해 왔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인간은 진화의 시계를 빠르게 만들었다. 환경은 더욱 빠르게 변한다. 인간이 만든 환경은 생물들이 충격에 적응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변화는 생물 생존에 중요하다. 긴 시간은 자연선택이 가능하게 하지만 빠른 변화는 모든 생물을 멸종시키게 만든다. 이런 충격에 필요한 것은 창의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창의적인 상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계를 높여 왔다. 인간은 빠르게 멸종해 갈 것인지 적응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인간은 지구를 제멋대로 바꾸었고 그 칼날은 다시 인간을 향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구멍을 기술로 채워 넣으려고 하지만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생태계는 빠르게 진화하며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인간이 다시 자연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 책은 까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많은 과학 지식은 여전히 인간의 시각에서 해석되고 있다. 다윈은 진화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고 했지만 그것은 인간과 더불어 포유류에 한정된 시선인지 모른다. 개체가 많을수록 세대가 짧을수록 진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다. 이것이 인간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많은 환경적 대응도 그렇다. 인간은 늘 근시안적이고 인간 중심의 대처만을 해왔다. 예전에는 무지에 의해서 지금도 여전히 무지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곤충의 8종 중에 7종은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은 어떨까? 결국 인간은 지구 생물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얘기하는 게 맞을 거다.
매일 새로운 종이 태어나고 또 사라진다. 종의 탄생과 소멸은 자연사의 불변의 법칙이다. 수억 년을 살았을 생물들에 비해 인간은 어린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400년을 넘게 사는 조개가 있고 1천 년은 족히 넘겼을 바닷가재도 있다. 게다가 1억 년은 살았을 미생물도 존재한다. 어린애의 투정이 지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고립된 생태계에 커다란 통로를 만들었다. 식물과 곤충뿐 아니라 수많은 미생물과 바이러스가 세계로 흩어지고 또 정착했다.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한 토종 생물들이 사라져 갔고 위세를 떨치던 외래종은 생태계의 조화 속에 녹아들어 갔다. 세상 시끄럽게 했던 황소개구리도 이제는 가물치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어 버렸으니까. 생태계는 새로운 종을 인식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훌륭하게 적응하고 밸런스를 맞춘다.
'섬 생태학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고립된 생물계는 그 규모가 작을수록 외부 충격에 약하고 빠르게 멸종되어 간다는 것이다. 큰 섬의 장점은 다양한 생물과 많은 개체 수다. 작을수록 한 번의 변화에 멸종되어 버리기 때문에 최근과 같이 변화가 잦은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의 시대 인간은 편협한 지식으로 생물을 대한다. 정원을 만들고 작은 숲을 만든다. 물론 그것의 좋은 점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것은 분명 인공적인 섬이다.
데이브 굴슨은 <침묵의 지구>에서 이점을 언급했다. 대규모 이동이 필요한 동물들에게 국립공원, 작은 농장등의 고립된 형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는 새로운 섬을 만든다. 낮은 온도에서 사는 식물들은 온난화 점점 고산지대로 이동한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산꼭대기는 새로운 섬이다.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는 이렇게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
변화하는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하나의 일에 전문화된 생물들은 빠르게 멸종한다. 그리고 서로 공생 관계에 있던 생물들은 공멸의 길을 걷는다. 까마귀는 환경에 따라 행동과 먹이를 바꾼다. 비둘기도 시궁창의 쥐도 모기도 그렇다. 인간이 만든 환경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인간은 수천 종의 조류, 식물, 포유류, 곤충 등을 포기하고 고작 몇 종의 새로운 모기와 쥐를 얻었다. 인간은 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인간이 가속화시킨 온난화는 열대지방을 급속히 늘려 나가고 있다. 우리는 더 북쪽으로 이사를 해야 할 채비를 해야 한다. 기온이 오를수록 바이러스와 미생물은 급속히 증가한다. 인류는 이를 피해 서늘한 곳으로 이동했다. 잘 사는 대부분의 나라들의 기온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지구의 기온이 오를수록 인간이 이들과 접촉할 기회는 더욱 많아진다. 인간이 없애버린 생태계의 구멍을 과학으로 메꾸려고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자연은 인간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균은 고작 10일 만에 취사율의 3000배에 달하는 항생제에 내성을 보였다. 대장균에게 10일은 인간에게는 2만 년의 시간과 비슷하다.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할수록 치명적인 것은 인간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벌써 몇 종은 백신에 내성이 생겼다. 우리 몸의 많은 미생물들은 우리가 먹는 약품에 내성을 가지고 있고 가지게 될 것이다. 화학적 백신보다 박테리오파지에 더 많은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 또한 그렇다.
인류는 천적을 없애고 그 자리를 지속적으로 과학과 기술로 채우려 한다. 이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자연은 엄청나게 복잡하게 엮여 있고 지구의 생물 중에 인간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할지라도 창의성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의 변화가 닥친다면 분명 인간 또한 멸종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사에서 아주 짧은 기간 존재했고 어린 종은 언제나 위험에 취약했다. 개체 수를 따지더라도 거대한 나무에 존재하는 새순 같은 수준의 개체 수밖에 되질 않는다.
인류는 자신의 위험을 지구의 위험이라고 호도하며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견디는 방사능의 20배에서도 살아가는 생물도 있고 섭씨 55도가 가장 살기 좋은 개미도 있다. 물이 펄펄 끓는 온천 속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빛이 들지 않는 심해 바닥에는 지상보다 많은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꿈도 못 꾸는 일들을 이들은 이미 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에서 살아가는 세균들도 있다. 인간이 미래 기술로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게 오만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인간은 자연이 하는 일 중에 얼마나 많은 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란 말이 있다. 꽤 유명한 말이지만 인간은 기꺼이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자만심 넘치는 인간은 여전히 지구 생물로 부터 배우고 백신을 만들고 기술을 모방하고 있다. 인간의 위기를 편협한 시각으로 덤비지 말고 미생물에게서 개미에게서 배우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인간은 여전히 무지하며 지구 생물체의 하나일 뿐임을 인식하고 다른 종들의 생존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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