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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 사이언스북스

야곰야곰+책벌레 2023. 4.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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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은 몇 가지 오해가 있는 듯하다. 인간의 선함을 강조만 하지 않는다. 인간의 악함 어떻게 나아지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두께에 비해 페이지 터너라고 불릴만하다. 일단 핑커 교수는 글을 너무 잘 쓴다.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위트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두꺼워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어려운 책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엄청 두꺼워 보이지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폭력성을 버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많은 양의 통계 자료와 자신만의 고찰을 곁들인다. 루소가 말했던 문명 이전의 사회의 평화롭고 평등했을 거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는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고 그에 따른 문제는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절망스러울 정도의 감각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현실은 굉장히 잘못된 것 같고 예전 시대의 모습에 향수를 느낀다. 글자와 그림 속에서는 느껴지지 않은 잔인함은 뒤로 한 채 미화된 역사의 한편을 그리워한다. 물론 모든 것이 잘못된 시대는 없을 거다. 하지만 기술과 문화는 발달하고 있고 우리는 점점 더 잘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는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이 바로 학문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다. 폭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뉴스를 도배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사라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내 옆에 있는 폭력은 인류 전체의 감소에 비해 직접적이다. 통계학적으로 설명하다 보니 죽은 사람 한 명은 숫자 1로 치안된다. 그런 사실에 첫 번째 반감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한 명의 죽음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다수의 죽음은 통계가 되고 영웅시된다. 마치 수많은 전쟁의 역사에서 처럼... 야만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오랜 조상의 화석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인간에게는 동족 살인은 흔한 일이었다. 다른 종을 모두 멸종시켜 버린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이니까. 인간을 제물로 받친 역사의 기록은 무수히 많고 구약 성서에서 조차 2000만 명이 넘는 인간이 죽어 나간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은 인간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조금 근대로 오면 수많은 제국의 집단 학살과 잔인했던 고문, 마녀 사냥등이 아무렇지 않았다. 콜로세움에서 인간들끼리 죽고 죽이는 모습을 즐겼다. 안타깝게도 이런 본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한 천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점차 폭력적인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고 예전에 당연했던 모습들을 이제는 끔찍하게 생각한다. 더 나아가 아이를 체벌할 수 있는 부모의 폭력성마저도 부도덕한 모습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소수자에 대한 폭력등은 점차 줄어가고 있다. 인간은 폭력성에 대항하며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성이 사라지는 과정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리바이어던은 혼돈의 상징이지만 홉스는 이를 통치와 질서를 보장하는 힘의 소유자라 칭했다. 폭력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복수'다. 그리고 폭력은 도덕과 정의로부터 출발한다. 누군가 심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은 도덕적이고 상대는 그렇지 못할 거라고 판단하는 도덕적 간극은 '복수'를 부추기게 된다. 하지만 '복수'를 대신한 강한 존재의 등장은 개개인의 복수를 가로막는다. 리바이어던은 개인들의 복수를 대신한다. 수많은 부족은 국가가 되었고 국가는 제국이 되었다. 홉스가 말한 하나의 거대한 리바이어던 아래 놓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좋은 점도 없지만 리바이어던의 출현은 폭력성의 감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매너는 지식 불평등의 산물이기도 했다. 귀족들은 하층민들과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매너나 예절을 만들었다. 그 당시 매너를 다룬 책에는 우스울 정도로 세세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길 가다 오줌 누지 말라는 것 같은 지금은 당연한 것들도 담겨 있다. 그런 사소로운 것마저 지켜지지 않던 시대였다. 매너의 탄생을 문명화로 얘기할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계층이 희석되면서 매너는 사회 전반적으로 퍼졌다. 매너와 예절이 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책의 탄생은 인간 사이의 네트워크의 확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친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더 호의적이며 감정적으로도 더 많이 공감한다. 내 가족의 아픔과 길 가다 만난 사람의 아픔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책은 그 범위를 넓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을 익혀 나갔다. 내 주위라는 범위는 국가로 넓어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를 넘어 우주에도 감정이입을 한다. 네트워크의 발전은 공감 능력을 향상해 준 듯하다. 

  네트워크의 향상은 비단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는 철저히 분업화되었고 나의 잉여의 산출물을 다른 이가 구매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죽여서 얻는 약탈의 이익보다 상대를 살려 두고 이뤄지는 상업의 이익이 더 컸다. 게다가 안전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가 이해관계로 역인 지금의 시대는 누구나 이웃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발생한 세계 대전. 인류의 무참한 죽음을 소식으로 접한 인류는 인본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더 예전의 세상에서는 더 많은 죽음과 학살이 있었지만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기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들이 근대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런 폭력에 대한 저항은 점점 더 디테일해져 왔다.

  외부 오염에 대한 혐오감은 '폭력'을 인간 본성이다. 인간의 선함을 얘기하려면 반드시 악함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인류가 어떤 폭력들을 저질러 왔으며 어떤 메커니즘으로 폭력이 완성되어 갔는지를 얘기한다. 그러면서 그런 메커니즘의 고리가 왜 약해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그 사실을 통계로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인류는 상대에 대해 공감하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추상 능력의 향상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폭력성이 줄어들고 있는 많은 이유 중에 가장 으뜸으로 '이성'을 얘기한다.

  이성은 양날의 검과 같다. 똑똑하고 나쁜 놈이 제일 나쁜 놈이라는 얘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성의 방향을 제법 잘 조절했고 투명해진 사회와 서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죄수의 딜레마가 아닌 평화의 딜레마를 택했다. 이성이라는 추상력을 가지는 순간 인간은 멈추지 않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선 거 같다. 저자는 엘리베이터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지만 인간의 발전은 지수적이다.

  너무 빠른 발전에 이성에 대한 혐오가 생기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가 넘쳐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시대일수록 '계몽'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인간은 선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악함을 버리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고 그 속에서 '계몽주의'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인류의 발전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허망함과 자괴감에 빠져있는 지금의 시대에도 배우고 나아가길 응원하는 것 같다.

  벽돌책이라는 저항을 벗어던지면 이 책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우선 저자는 글을 너무 잘 쓴다. 그리고 희망을 얘기한다. 그것도 근거 있는 희망을 말한다. 치우치지 않은 사실들을 얘기해 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해 왔다고 응원한다. 수많은 역사적 기록, 넘쳐나는 심리학적 실험과 이론들. 그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인문학적 문장들. 그의 주장에 오류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의 신념이 너무 사랑스러워 지지해주고 싶을 정도로 동화되어 버렸다.

내 속의 선한 천사도 악마들을 다독거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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