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포기할 수 없는 개인적인 안락함이 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에 우리는 도덕성을 부여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인류에게 좋다는 것이다. 그 인류라는 것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생태계는 우리가 알 수 없을 만큼 얽혀 있고 인간들 마저도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피하고 싶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에너지는 변하지 않고 에너지가 한쪽으로 쏠리면 분명 에너지가 부족한 곳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초래한 프레온 가스. 그 속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과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이 책은 서사원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 기후 위기를 떠들대는 지구에서 CO₂는 주범이 되어 버렸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연신 떨어대고 있지만 지금의 안락함을 놓치고 싶지 않다. 기후 환경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을 소리 높이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하나의 메시지일 뿐은 아닐까. 소비가 줄어드는 것을 막고자 친환경이라며 떠들며 소비를 조장한다. 그린워싱을 하며 안도한다. 조금 불편한 것이 오히려 더 나은대도 말이다.
20세기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프레온 가스'는 대체 냉매가 나오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오존은 조금씩 회복되었고 대체 냉매는 17년이 소요되긴 했지만 분해가 되기도 했다. 전혀 분해되지 않는 프레온 가스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하지만 이 대체 냉매인 HCFC도 CO₂의 1300배에 달하는 온실 효과를 가져온다. 여전히 분해되지 않은 채 공기 중에 떠도는 CFC(프레온 가스)는 어떨까. 지금 온실 효과의 최대 주범 역시 냉매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계는 탄소 배출권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탄소를 줄이거나 파괴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불법의 탄소를 더 많이 만드는 부작용을 가지고 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냉매를 파괴하며 수익을 만들었고 냉매를 만드는 돈보다 파괴하여 얻은 이익이 더 컸기에 암암리에 더 만들어 왔다. 탄소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은 탄소 생산을 조장했다. 그렇다고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단속과 형벌과 조화를 이루면 분명 더 나아지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처음 냉매를 마주하는 자세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었지만 예전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인간 생활의 조건'도 아니었고 그렇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유한 사람들이 바람 잘 통하고 서늘한 그늘에서 생활했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땀을 흘린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몸은 더울수록 열충격단백질을 생성하기에 점점 더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에어컨 아래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더위를 점점 더 못 견디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쓰는 것에 심적 괴로움을 가지자는 말은 아니다. 더 많은 이유로 (예를 들면 산업의 공조 시스템) 개인이 쓰는 냉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냉매의 관리는 개인이 줄인다고 큰 개선이 생기지 않는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분리수거를 하고 채식을 하고 하는 것처럼 그냥 마음의 문제다.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시키는 것은 결국 발전이 빠른 나라들이다. 그들이 발전 과정에 뿌려놓은 수많은 물질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발전에 기여했다는 부분을 차치하고 보면 선진국 사람들의 안락함만큼 후진국 사람들은 피해받아 왔다. 폭우가 쏟아지고 화재가 발생하며 생긴 파괴의 공간에 누가 있는지만 보면 알 수 있다. 에어컨을 틀면 누군가는 홍수에 집이 떠내려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이 냉매의 생산, 사용 금지 및 대체제 전환을 이룬 몬트리올 의정서는 박수받아 충분하다. 하지만 이 프레온 가스의 주요 생산국은 모두 백인이 살고 있는 나라였고 오존층의 파괴는 백인이 흑인보다 200배나 높은 피부암 발병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짚어야 하지 않을까. 자외선이 하얀 피부를 겨냥하지 않았다면 합의가 가능했을까? 과한 해석이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덮친 수많은 재해와 어려움에 대한 지원과 복구가 왜 이렇게 늦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입법은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국회의원 퇴직금 같은 입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만 봐도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이 책은 냉매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으며 인류가 어떻게 냉매에 길들여져 왔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냉매의 개발은 음식의 신선도를 높여 주어 인류 건강에 이바지했다는 사실도 분명하며 공장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생산성 향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무더운 여름에 더위와 시름하지 않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게도 해주었다. 책은 냉매를 쓰지 말자와 같은 극단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작용 없는 발전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생태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고 해서 바로 사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온실 가스와 같이 아주 천천히 효과가 나타나는 것들은 더욱 알기 어렵다. 자연에 없던 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문제점이 보고 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누리는 작은 안락함이 가져오는 피해를 인지하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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