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8일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대신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여기서 일본은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前 총리의 '전후 50주년 특별담화'를 발표하며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문서화했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은 일본 위안부가 강압적으로 모집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로부터 출발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의 발표는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중요한 사실이다.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한 일본 81대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발표한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라는 성명은 일본 현직 총리가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를 한 최초의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이런 사실들은 일본 정부의 일관된 태도였다. 일본 88대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또한 '전후 60년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또한, 일본국은 일찍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함과 더불어 지난 대전에서의 내외의 모든 희생자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비참한 전쟁의 교훈을 풍화시킴이 없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는 일 없이 평화와 번영에 공헌해 나갈 것을 결의합니다.
일본 총리의 명확한 사죄표명과 한국 대통령의 진지한 수용은 한일 양국이 역사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워낙 일본통이기도 했기거나와 신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국제질서를 재편해야만 했던 일본의 사정도 한몫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런 노력 속에서도 일본의 경제는 살아나질 않았고,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은 정치인들은 국민의 시선을 국외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기점으로 양국의 관계는 틀어진다. <겨울 연가>가 일본 대륙을 강타하며 민간 교류의 문을 열었으나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날' 조례 제정,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다. 일본의 독도 및 과거사에 대한 망언이 있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득별담화문'을 발표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아베 신조 총리를 필두로 일본 정부는 우경화되었고, 위안부 부인, 다케시마 날 행사 진행, 역사 교과서 검정 통과 등으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는 한국인의 역린을 건드렸고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후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면 발표보다 앞으로 양국 정치인과 국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강조하고 있다. 이 선언문의 주요 취지는 '일본 총리의 사죄' 그리고 '일본이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라는 것이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부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문을 계속 언급하기에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이뤄지는 역사는 일본의 반성과 사죄 위에 서 있다. 과거를 덮고 미래를 함께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발언들은 글과 영상으로 남아 있다. 듣고 있자면 그들의 마음이 전해지기도 한다.
나는 90년대 일본 문화를 접하며 자라온 세대로 일본에 대한 거부 반응은 덜한 편이지만 역사에 관해서만은 단호한 편이다.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을 넘어 전쟁에 민간인을 끌어들였다. 관동대지진 때의 학살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 사회에서의 한국인의 차별과 멸시도 있다.
역사와 문화/경제를 나누어 접근하던 투트랙 전략을 깬 건 아베 총리다. 서로 노려보지만 놓지 않았던 끈을 아베는 협박의 용도로 사용했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문제를 만든 쪽에서 풀어야 한다. 일본과 우리의 역사 대부분이 그렇다. 우리가 풀어야 할 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죄하는 것뿐이다.
미워도 이웃이다. 멍청한 위정자들의 싸움에 나라가 말려든 느낌이다. 일본 내에서도 과거사를 통렬히 반성하는 지식인과 시민들이 존재한다. 우리 또한 망발을 하는 사람들이 싫은 것이지 일반적인 일본인이 싫은 것이 아니다. 유죄 아니면 무죄라는 식의 논리로만 살아왔던 정부라서 그런지 그냥 덮고 OK라는 느낌이 강하다. 나눌 수 없는 연속선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실수다.
권력자가 서로의 권력을 위해 갈라 치기는 동안 세월은 너무 지나버렸다. 과거와 닿아 있지 않는 세대 중에는 '그거 무슨 상관?"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거 뭔데 다짜고짜 사과하라는 거야'라고 얘기하는 일본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민간 교류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일본의 학생들이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과거를 알아가던 어느 TV프로그램처럼 말이다.
흉터는 희미해질 순 있지만 지워지진 않는다. 폴란드가 끊임없이 독일에게 청구서를 내밀어도 매번 사과만 하는 독일의 노력을 일본 그리고 우리 정부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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