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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 (최봉수) - 가디언

야곰야곰+책벌레 2023. 3. 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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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로마 역사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만 봐도 15권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집중하는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책이다. 그 대단한 역사를 가진 로마가 갑작스레 사라진 이유를 찾아본다. 그야말로 '시시껄렁'하게 사라져 버렸다.

  제국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심 그것으로 무엇을 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냥 가지고 싶었던 이가 만들었던 제국의 소멸에 관한 이야기는 가디언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로마라는 제국은 세계적으로도 알려질 만큼 찬란한 문화를 자랑한다. 천년을 유럽을 지배했던 대제국이기도 하고 서양사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로마의 한 축인 서로마의 소멸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그야말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쟁과 기아와 전염병도 없었다. 그냥 갑작스레 사라졌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사라지듯 말이다.

  서로마의 멸망을 얘기하려면 '훈족'의 영웅 아틸라라부터 설명해야 한다. 훈족은 튀르크 계열의 유목민으로 추정한다. 이 특별한 왕은 기존의 왕과 달리 로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내분을 외부 전쟁으로 돌렸고 전시품을 그들에게 나눠줬다. 훈족이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가 되었고 유럽은 그야말로 공포에 떨었다. 아틸라는 아주 느리고 확실히 약탈하며 전진했다. 그 목적이 내분을 가라앉히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아틸라의 존재로 서양은 동양의 부족들이 약탈만 한다는 인식에서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인식으로 변화했다. 동양의 부족들 역시 자신들이 제국의 운명을 결정 지을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유럽은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시대는 영웅을 만들었듯 로마에는 아에티우스 장군이 있었다. 최후의 로마인으로 추앙받는 장군은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아틸라에게 첫 패배를 안긴다. 하지만 그의 퇴로를 열어 줌으로써 후대에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 후로 아틸라는 아에티우스 장군과 만나지 않기 위해 기습을 하는 전투 방식으로 바꾸게 된다.

  시대의 영웅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최후의 로마인은 권력의 불안함을 이기지 못한 왕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걸축한 인물은 이토록 허망하게 시대를 떠난다. 그 후, 로마에는 3명의 비겁한 권력자 나라를 조용히 소멸시킨다. 

  리키메르, 오레스테스는 권력에 집착했고 자신 혹은 대리청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권력자 오도아케르는 그야말로 권력만 좇는 사람이었다. 왕을 추대하지도 권력을 확인받지도 않았다. 그저 공석을 만들어 두었다. 자신의 욕심과 속셈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아예 없는 것처럼 아니면 정말 없을지도. 권력의 냄새에 민감하지만 막상 권력을 쥔 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왜 권력을 가지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만 한다. 그저 심판만 할 뿐이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놈이다. 자기 집의 불을 꼭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그저 자기 자리만 지키면 감사할 따름이다. 오도아케르는 그런 인물이었다. 

  동로마는 그저 숟가락만 들고 자리만 유지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서로마의 이 사람의 목을 연희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날려 버린다. 왕이 없는 제국. 이제는 권력자도 없는 제국은 그렇게 증발하고 동로마에 흡수되어 버린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가 권력의 중심에 앉으면 위험하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앉았는지 모르는 자는 더 위험하다. 그저 자리만 탐한 자는 자신의 자리만 지킬 수 있다면 뭐든 한다. 책 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나는 일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80 페이지로 만나보는 두 명의 영웅과 세 명의 비겁한 권력자의 이야기는 엑기스처럼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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