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인문 | 철학

(서평) 어른의 문해력 (김선영) - 블랙피쉬

야곰야곰+책벌레 2023. 2. 16. 07:05
반응형

  소위 요즘 애들의 문해력 논쟁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느냐와 왜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하냐의 논쟁은 늘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한자를 사용해 왔고 많은 명사들이 한자로 되어 있다. 무려 75%가 한자어다. 반대로 얘기하면 중국어 명사의 80%는 한국 한자와 다르지 않다. 중국어를 모르는 어르신이 간판만 보고 이해하는 경우라든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 사람들이 중국어를 쉽게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한자뿐만 아니다. 오랜 시간 사용된 우리말이 우리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 애들의 문해력을 논하기 전에 요즘 어른들의 문해력은 어떤지 먼저 돌아보면 어떨까?

  줄어가는 독서량, 점점 짧아지는 문장. '대박'과 '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방법, 글을 쓰는 힘을 기르는 PT를 얘기하는 이 책은 블랙피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일 년에 300권 남짓 읽는 나에게도 여전히 책 속에는 모르는 단어가 많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가 따로 찾아보곤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시 사용해야 기억 속에 남을 텐데 어휘를 재활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주 만나는 단어들은 이제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럼에도 문장에서 떨어져 나온 단어를 보면 생경하다. 

  문해력 레벨 테스트를 펼치지 마자 '헉'하는 느낌이 들었다. 10개의 단어 중에 아는 단어가 몇 개 없었다. 물론 해당 단어가 책 한 권을 뒤져도 한 번도 못 볼만한 것들도 많아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충격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2등급으로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량과 문장 만들기 등과 같은 테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독서법과 글쓰기법에 대한 8주 완성의 연습을 제시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이유가 정보를 얻거나 깨달음을 얻는 이유이며 그런 이유라면 책을 읽는 양보다 사색을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 것도 안다. 그리고 생각을 글로 써낼 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 일련의 작업들을 소개한다.

  가볍지 않은 테스트를 통과하면 독서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책 읽기 전에 책에 대한 느낌 적기, 낭독하기, 질문하며 읽기, 요약하며 읽기, 경험과 연결 짓기 등이 있다. 읽은 내용을 다시 나의 언어로 써보는 연습과 문장을 통째로 가져와 낱말을 바꿔가며 나의 이야기를 적는 연습도 있다. (사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정확한 예시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독서도 운동과 비슷하다고 얘기들 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이 본능적인 게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보통 '근육'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지만 나는 '관성'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 책을 어떻게 많이 읽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독서 또한 관성이 있어 읽지 않다가 읽으려고 하면 정지 마찰 계수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않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쉽게 구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서가 일정한 속도로 유지되면 이젠 멈추기가 쉽지 않게 된다. 활자 중독도 운동 중독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문해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문해력이라는 것은 쉽게 표현하자면 '눈치'가 있는 것이고 조금 더 멋지게 얘기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말은 맥락이 중요하고 숨은 뜻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글은 말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 

  글은 쉽게 읽히게 쓰는 것이 중요한데, 읽는 것은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을 읽어야 한다는 건 모순되는 느낌이지만 쉽게 쓰려면 어려운 문장도 곧잘 이해해야 할 만큼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왜 어려운 말을 익혀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효율과 합리를 강조하는 지금의 시대에 충분히 가져볼 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많은 말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진다는 것과 같다. 인간은 자신이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알 수 있고 '느낌적인 느낌' 같은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쏟아낼 수 있어야 마음속에 응어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어려운 학문을 많이 알아도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것을 함으로써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