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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로레인 대스턴) - 김영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12. 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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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보니 오해가 있었다.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라는 질문은 '왜 자연에서 찾지?'라는 대답을 해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의외로 명확한 규칙을 보여주는 자연은 우리에겐 무한 신뢰의 대상이며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지속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인간의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느냐? 왜 자연의 당위성을 인간의 규범에 빗대어 권력을 양산하려 하느냐? 의 질문과 답으로 이어졌다.

  자연에 대해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티클만큼의 사실을 가지고 인간을 족쇄에 옭아매는 규범에 대해 비판하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은 인간만의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말하는 이성은 인간의 특정한 성질의 상징일 뿐 이성적인 존재 그 자체를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소의 이성을 알 수 있다면 그들의 신은 소의 형태를 띠고 있을 거라 했다. 외계 생명체를 모두 인간의 형상으로 상상하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것이다. 우주에 '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겠지만 인간으로만 대표될 수는 없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은 굉장히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연은 존재들의 본질 그 자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시대와 맥락 그리고 위치에 따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다는 것은 자연은 그 자체로 무엇으로든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은 자연에 어떠한 가치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자연은 단순한 사실인 것이다. 그 '사실'은 '당위'가 필요한 인간 행위의 강요나 투영을 받아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개미처럼 일해야지"
  "꿀벌처럼 협력해야 해"
  "동성혼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

  더 나아가는 우생학이나 사회진화론에까지 퍼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명체는 야생적이며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연의 사실에 인간의 도덕을 투영한 결과다. 하지만 개미라고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며 자웅동체나 암컷끼리 교배를 진행하는 도마뱀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좁은 식견으로 '당위'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다. 

  자연의 질서에서 특징적인 형태를 정의하고 이를 훼손하는 괴물, 불균형, 비결정주의 정을 배격해 왔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런 부자연스러움들은 공포, 두려움, 경이로움과 같은 반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질서 그 자체도 악몽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질서조차 무질서 앞에서는 무색하다. 끝없는 내전은 독재보다 더 큰 재앙으로 느끼는 것처럼. 

  사람이 질서를 원하는 것은 과거를 비추어 미래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 사회의 '규범'이며 이것은 공동체를 함축한다. 더 중요하게는 미래로 뻗어나가는 시간적 지평선을 암시하는 것이다. 규범은 내일도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보장하기에 충분한 질서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에 호소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항상 자연을 모방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연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고 그래서 친숙하다. 자연에는 수많은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이 상상하는 질서는 모두 자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규범은 질서를 요구하고 자연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서의 예시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서로 상이한 규범이라고 할지라도 자연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의 규범이 자연을 인용해 '당위'를 얻어내려고 한다면 그 반대의 규범 또한 자연을 인용해 '당위'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자연에 빗댄 규범이 사람들을 압도할지 몰라도 자연에 빗대는 순간 그 당위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끈질기게 토론하며 만들어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자연의 사실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가장 좋은 규범을 만들어 내는 것. 다르게 얘기하면 무수히 많은 자연의 질서 중에서 인간에 맞는 질서를 찾아내는 것 그것은 인간의 일이지 자연의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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