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어 부단히 찾아보던 중 눈에 들어온 책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펼칠 수 있었고 또 즐겁게 읽어낼 수 있었다. 사실 글쓰기 방법에 대한 얘기가 가득할 것 같았는데, 글쓰기 강의 그 자체였다. 글쓰기 강의를 맡은 저자는 여러 해 이 강의를 이끌었다. 그리고 3편의 에세이를 쓰고 나누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이 책은 그동안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 내었던 에세이에 대한 저자의 화답과 같은 에세이다.
대학교에서 이렇게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점이 참 좋았다. 미국 대학교 강의에서는 자주 볼 수 있었던 강의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나를 소개하는 글로 시작하는 이 수업은 25명 정원이다. 강의는 강사가 지휘하지 않는다. 적당히 이끌 뿐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해진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도착해 있는 강사라니 빡빡하다고 느낄 수 도 있지만 시간이 부족한 강의라 수업을 들으러 늦지 않게 도착하려 노력하는 수강생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우리 사는 모든 이야기가 인문학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이 좋았다. 그것이 게임이나 걸그룹에 대한 이야기여도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각인 것이다. 진지하고 어려운 이야기만이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학생들의 글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동영상도 챙겨 봤다는 저자의 노력에 강의가 왜 인기 있는 줄 알 것 같았다. 저자는 평탄한 삶을 살아온 탓에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훨씬 넓은 세상을 만난다고 한다. 우리의 이야기가 모여 세상의 이야기가 되듯, 어느 누구라도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는 없는 것이다.
나를 소개하는 글쓰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나도 나를 잘 모른다는 것이고 흘러가는 인생의 어느 단면을 적어내야 하는지 그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확신이 없는 글쓰기는 괴롭다. 그리고 자신을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낼 것인지는 더 고민스러운 일이다.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일기장에 적을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쉽게 써 내려갈 것이지만 남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만큼 자기를 성찰하기 좋은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쓰고 함께 읽는 수업은 강사의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한다. 특히 첨삭의 경우는 학생들이 정답으로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에 더욱 조심한다고 한다. 모두 함께 쓰고 함께 읽으면 글쓴이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독자로서 어떤 점이 아쉬운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지를 자율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 수업이라면 꽤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이 있나 싶기도 했다.
책 후반부에는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글들이 실려 있다. 가슴 먹먹해지는 글부터 재밌는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모든 글이 즐겁게 읽히는 것은 아마 날 것이 주는 감동이 있어서다. 특히 장애에 대한 얘기는 깊이 남았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해안가에 있는 모래들이라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사막에 있는 모래다. 물을 머금은 모래는 성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사막에 있는 모래가 성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까라는 그 문장에 찡함을 느꼈다. 대단해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만드는데 들었을 노력까지 평가절하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오래 묵혀 놓은 책 빨리 읽고 해치워 버리자 라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나중에 도서 모음을 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의 솔직한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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