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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송경모) - 트로이목마

야곰야곰+책벌레 2022. 11. 2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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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사상가들의 말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그들의 생각을 재단해서 우리의 생각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만 하려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애덤 스미스가 두 번 정도 언급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의 시대 유행어처럼 사용하고 뭐든지 잘 될 거며 적극적인 투자를 옹호하는데 '케인스'를 소환한다. 파레토는 생전에 말하지도 않았던 20:80의 법칙도 파레토의 법칙이 되어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상가들을 오해하고 있는가? 그런 물음과 대답을 위해 이 책은 쓰였다.

  마치 3권 이상의 책을 읽을 느낌이 남을 정도로 함축이지만 강렬했던 이 책은 트로이목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하는 것이 애덤 스미스다. 소위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항상 얘기한다. 시장은 자유롭게 두면 그 자체로 잘 작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경제는 지금만큼 복잡하지 않았고 그런 애덤 스미스 조차도 국가의 역할을 얘기했다. 국가는 전쟁을 막고 구성원들이 정의롭지 못한 대우를 받거나 가하면 해결해야 한다. 시장의 힘으로 생산할 수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공공의 업무를 해야 한다. 특히 생필품에 대한 과세나 사업 이익에 과도한 과세를 비판했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는 도덕 철학자다. 그가 말한 사회상은 지금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사람은 애덤 스미스가 생각한 만큼 도덕적이지 않은 것일까.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파편화된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생각이 편협해질 것을 걱정해서 노동자의 교양을 훈련시킬 장치가 필요하며 가난한 자를 위한 공립학교 설립을 주장했다. 물질이 풍족해지면 번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노동자들의 마음이 퇴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계몽과 도덕적 인간을 얘기한 애덤 스미스의 시선을 벗어났다. 인간의 물욕은 높은 수준의 덕성으로 억제되지 못했다. 경쟁만 교육하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생시몽의 생각은 시작되었을까? society가 처음 지녔던 말은 '함께하는 사람'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와도 닿아 있다. 그는 개인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잘못과 책임이 아니라 그에게 올바른 지식 와 습관, 능력을 기를 기회를 주지 못한 환경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인본주의 경영의 시작이었다. 사람 중심 경영과 이익 중심 경영의 모순을 깨트린 생시몽은 현재 HRD의 선구자다.

  '기업가'라는 단어는 프랑스의 자랑이다. 대부분의 경제 용어가 영어인데 반해 기업가만은 프랑스어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바티스트 세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둘로 나눴다. 바로 기업가와 관리자다. 기업가는 혁신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역동하면서 경제를 진화시키는 사람이다. 기업가는 남의 지식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지식과 지식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발명을 뛰어난 이익 창출로 연결하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어떤 연결점을 기업가들은 찾아내고 비즈니스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그저 잘 살게 된 국가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의 생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국 한 국가가 되기까지의 국가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바로 애덤 스미스의 '영국'을 예를 들어도 강한 영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앨리자베스 여왕 1세의 강력한 통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경제대국들은 자신을 위해서 보호주의를 꺼내 들면서 다른 대륙에 대해서는 개방을 요구한다. 개방은 강한 자에게 유리한 것이다. 지금의 미국마저도 중요할 때마다 보호주의를 꺼내 든다. 풀뿌리 경제가 나무로 자라기 전까지 국가는 산업을 지켜줘야 한다. 세계 커피 시장의 크기를 비해 케냐의 소득 수준은 절망적이다. 산업의 기반을 강대국들이 모두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 또한 자유 경제의 민낯인 것이다. 힘 있는 세력은 언제나 약자에게 자유방임이 가장 좋은 것이라며 꼬드긴다. 마치 돈 많은 사람이 '법대로 하자'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문 아니 모든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정치성'을 띄고 있다. 미디어는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고 권력은 이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이를 부정하고 나선 이가 바로 '퓰리처'다. 우리에게는 '기자들의 노벨상'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이는 올바른 것만 얘기하고 시민들이 관심 가지는 것에 집중하라고 얘기한다. 그는 언론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었고 언론전문대학을 설립하는데 거금을 기부했다. 지금의 언론은 구독료보다 광고료에 의존한다. 광고료는 독자 수에 비례하겠지만 결국 광고료를 지불하는 이에게 당당해질 수 없다. 우리는 마치 공짜로 미디어를 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권리를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구독료만으로 유지되는 언론사여야지만이 세상에 당당하고 구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기레기라고 불리는 아픈 사연이 이해가 가지만 이해하고 싶진 않다.

  파레토의 20 : 80 법칙은 여러 방법으로 해석된다. 세상의 나쁜 일의 80%는 나머지 20% 때문에 일어난다던지, 회사 수익의 80%는 20%의 아이템으로부터 나온다던지, 문제의 80%는 20%의 원인에서 기인한다던지 그런 식이다. 이런 공식은 자칫 잉여라는 단어와 결탁되는데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평가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가 있다 치자, 그 팀은 미드필드가 너무 좋아서 수비수까지 공이 잘 넘어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때 수비수를 잉여라고 볼 것인가? 편협한 정책은 때론 중요한 부분을 도려내는 악수로 이어진다. 사라졌을 때 비로소 중요함이 느껴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파레토는 '엘리트의 순환'이라는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가 교체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엘리트는 '여우형'과 '사자형'으로 나뉜다. 여우형은 뭔가를 계속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어떻게 보면 '진보 진영'처럼 보였고, 사자형은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보수 진영' 같았다. 여우형 엘리트가 사회를 발전시키면 사자형 엘리트가 자연스레 증가하고 결국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또 변화를 바라는 소망이 깊어지면서 또 교체된다. 역사는 이렇게 둘의 순환으로 흘러간다. 둘의 상태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얘기할 수 없다. 여우형이 지나치면 사회는 무질서화 되고 사자형이 지나치면 사회는 경직된다. 그리고 둘 다 국민의 뜻을 따른다고 얘기하지만 늘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의도에 불가하다는 점은 같다고 했다. 

   수학자에서 경제학자가 된 팔방미인 케인스와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슘페터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케인스 역시 에덤 스미스처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 나와 '케인스주의'가 되었다. 나 또한 케인스주의를 '기술 최고주의' 혹은 '기술 낙관주의' 등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는 광범위한 통찰을 하고 있었다. 슘페터는 '혁신'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린다. 리더의 역할을 할 때 가장 가슴 뜨겁게 다가왔던 '파괴적 창조'의 창시자가 슘페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의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 책은 사상과 경제학자, 기업가, 금융가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과 그의 생각을 정리 분석한다. 이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통찰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우리가 여전히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 배울 점이 있어서 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를 통해 최대한 빗나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의 말을 보기 좋게 재단해서 우리의 주장을 위한 근거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시대를 직시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연구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자본주의적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것 같으면서도 전체주의적이다. 모든 사상의 장점들을 계속 이어 붙여가며 결국 통합된 방향으로 간다. 권력 투쟁을 위한 이념적 대립은 소모적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 이야기처럼 고양이의 색깔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지금의 시대는 귀여우면 될련가) 

  현대에도 많이 인용되는 그들의 말의 참 의미를 파악하고 그 말 자체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분명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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