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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박정은) - 한빛비즈

야곰야곰+책벌레 2023. 1. 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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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고유한 삶의 시간 속에 겪는 많은 일에서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지금 나는 어디에 존재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한다. 인간다움이란 인류의 보편적인 화두지만 그 답은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모두 알 순 없다. 당장 나의 뒷모습을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조차도 볼 수 없는 면처럼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소크라테스에게도 공자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인간다움은 늘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조금씩 생체기가 나고 아물고 하며 진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적응하고 아물 시간도 주어지질 않은 채 빠르게 변화한 지난 몇 년의 세월 동안 우리를 잠깐 멈춰 보듬어 줄 필요가 있진 않을까?

  촘촘히 엮여가는 세상 속에서 모두가 곁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곁에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 그리고 공동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이 책은 한빛비즈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갑자기 닥친 Zoom의 세상. 방구석을 벗어나지 않아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지난 팬데믹을 통해 더 빠르게 다가왔다. 재택근무, 화상회의는 그전부터 있었지만 팬데믹은 모든 것을 강요했다. 팬데믹 초기, 비대면 수업을 위해서 PC나 태블릿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모든 집에 그것이 있진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와이파이까지 걱정하지 않았지만 분명 인터넷을 연결할 수조차 없는 가정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재앙은 늘 인간의 아픈 부분을 여실히 드러낸다.

  기술은 늘 중립적이다. 문제는 늘 사람이었다. 구글이 만든 얼굴 인식이 흑인을 잡아내지 못한 것도 애플의 Siri가 정통 미국식 발음을 하지 못하는 이주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데이터를 늘려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혜택의 우선순위가 생긴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공동체를 모두 살펴가는 것은 서로에 대한 소통과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 시대에는 클릭만으로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세계가 연결된 듯하다. 그런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공간에는 반드시 소외자가 생긴다. 우리에겐 익숙한 이 가상의 공간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반대로 촘촘하게 이어진 네트워크는 오히려 혼란을 가져다준다.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AI는 편협한 인간을 만들어 낸다. 최초의 클릭으로 송출된 나의 정보는 나만의 스타일에 가두어 버린다. 유사성이 없는 정보를 추천하지 않는 AI는 인간을 더욱더 편향적으로 만들고 공동체를 무너트리고 있다. 함께 티브이를 보던 시절. 관심 없는 뉴스를 접하던 시절에 비하면 우리는 더욱 단순하고 편향적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인간이 만든 네트워크 속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AI 추천에서 벗어난 사람들 또한 볼 수 없다. 아니 보지 않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AI에게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미학이라는 것도 없으니까. 

  구글의 딥마인드가 이세돌을 이긴 뒤 바둑판은 AI와 같은 기보가 유행이다. 자신의 행마를 AI에게 물어본다. 바둑은 병법서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한다는 <손자병법>의 수를 담고 있기도 하다. 오직 승리를 위해 두어 지는 매 순간의 경우의 수가 아닌 바둑판 전체의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바둑의 미학이 사라졌다며 은퇴한 기사들도 많다. 전체 판의 아름다운 어울림이 아닌 결과만을 종용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행마는 거칠다. 싸우지 않는 법을 상대를 단판을 지으며 독식하는 행마가 아닌 내줄 것은 내주고 취할 건 취하는 행마가 필요한 시대다.

  세상에서 소외받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오히려 모순이다. 세상은 평등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소수가 다수를 소외시킨다. 양극화는 그렇게 세상을 나눈다. 소외된 사람들은 또 그들끼리 서로를 소외시키기 바쁘다. 인종 차별, 난민 문제, 성소수자 문제 더 나아가 여성 차별과 남성 차별까지 말이다. 세상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소수를 일반화해서 상대를 공격하면 안 된다. 앞선 자를 뒤로 잡아당기지 말고 소외받는 자를 같이 설 수 있도록 당겨줘야 한다. 경쟁 사회라서 뺏고 뺏기는 관계가 되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만들어 가는 나. 그리고 상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나. 존재의 의미는 공동체 속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인간다움이라는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저자는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나아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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