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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건축, 300년 (이상현) - 효형출판

야곰야곰+책벌레 2023. 3. 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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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주거를 위해 집을 짓기 시작한 역사는 인류가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저 기능적인 것들이었다. 그 후로 건축은 늘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기술적인 영역이었다. 건축에는 목적이 있었고 건축가는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다. 건축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건축의 결과물은 결국 발주자의 생각과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은 설계자의 의도보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권력자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비평을 담은 이 책은 효형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건축이라는 본디 감상하라고 만든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용하기 위한 것이며 기능과 편의에 맞춰 설계되었을 것이다. 건축물은 이용자의 요구를 얼마나 잘 반영했느냐가 중요하다. 건축은 기예의 능숙함일 뿐이었다. 그런 시절에는 기예가 예술과 같은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기술과 예술은 그 구분이 명확하다.

건축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이용자의 요구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는 생산자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부분의 역사가는 이 시점을 근대 예술의 탄생이라고 본다. 본격적으로 생산자가 이용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생산자와 이용자의 간극이 생긴다. 기존의 생산자는 이용자의 의견에 부합하도록 노력했지만 이제는 생산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이 좋다며 자랑하며 판매한다. 생산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이용자는 이에 대해 잘 알 수 없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면서 비평이라는 것이 끼어들 틈이 생겼다. 비평가는 생산자의 작품을 설명하여 이용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적어도 생산자보다는 객관적인 의견을 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을 쓴 작가의 작은 합리화이기도 하다.  건축 300년 예술의 영역에 대한 건축에 대해 얘기해 볼 요량이다.

  우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곧잘 쓴다. 많이 알면 알수록 여러 가지 면을 느낄 수 있다. 요리를 그냥 먹을 때보다 셰프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지면 그 맛을 느끼고자 신경 쓰게 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마저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굳이 알아서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술이 그렇다. 알면 알수록 재미가 없다. 그저 놀라는 것이 좋을 뿐이다. 건축에도 이런 요소들이 있다. 외관상 느껴지는 멋과 사용하면서 알아챌 수 있는 미묘한 멋을... 알려주지 않고 깨달았을 때 그 감동은 배가 된다.

  하지만 늘 설계자의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레 깨닫길 원한 숨겨진 미는 아예 덮여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여기에 또 비평이 끼어들 틈이 생긴다.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해체주의로 이어지는 건축의 멋을 파악하려면 비평가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핵심만 짚어가며 즐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왕이나 귀족에 의해서만 지어졌던 건축물들은 두 번의 세계전쟁을 치른 뒤 그 권력이 해체되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인류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마르크스주의와도 닿아 있다. 모더니즘은 '다 함께 잘 살아보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사각 반듯한 모양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축물은 당시에는 흉물 같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한 건축물인 것이다. 너무 획일적인 모습에 실증을 느낀 이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그리고 기존의 것을 재구성한다는 해체주의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각각의 기류는 건재한 듯하다. 자신의 영역에서 더욱 진화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아파트가 밀집한 도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건축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직육면체의 구성이고 이것을 늘리고 줄이거나 뒤틀면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낸다. 원형을 이용한 것은 대체로 근대의 일이다. 건축이라는 것은 '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건축가 자신보다는 사회적 기류와 분위기가 영향을 많이 준다. 그렇기에 건축을 이해하려면 당신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다른 예술보다 유독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건축이기에 논쟁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결국 직육면체의 틀 안에서 변형을 가져오는 이 결과물은 결국 원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건축물은 그만의 의미가 있고 모사에 불과한 건물일지라도 그 배치와 비율의 문제는 건축가의 새로운 숙제이기에 그렇게까지 폄하할 이유는 없을지 모를 일이다.

  자연에 많은 생물들이 집을 짓지만 우리는 고작 직육면체의 집만 지을 뿐이다. 3D프린터로 집을 짓는다면 개미 정도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세상은 모두 둥글게 이뤄져 있는데 우리는 네모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 건축의 방향은 어디로 향할까. 여전히 함께 삶을 강조하는 효율성 더욱 날카롭고 정교해진 모더니즘들 최근에 등장한 여러 곡선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어느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게 없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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