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무엇을 무서워하거나', '무엇을 하기 꺼려하거나' 다. 공포, 두려움은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이며 본능이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기에 본능과 연결된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피하는 것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큰 공포는 '모른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미지의 무언가를 마주칠 때 느끼는 공포는 아는 무서움을 만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도 귀신의 집이 무서운 이유도 무서운 장면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부터는 점점 괜찮아진다. 놀이기구나 번지 점프도 마찬가지며 사직서를 내는 두려움, 이별을 얘기하는 대화 조차에서도 처음이라면 그런 알 수 없는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유전자에 새겨진 이 감정은 역사가 가장 깊고 강력하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의 극복은 배우고 경험해 보는 것일 뿐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지혜로워지는 것이 두려움을 정복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탐험가들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준비한다. 수험생은 미지의 문제를 풀기 위해 부단히 공부한다. 사실 일 분 일 초 뒤의 일도 모르는 일 투성이 인 것이 또한 인생이다.
반대로 시간을 이끌려 수도 있다.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여 세상이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수동적일 때보다 능동적일 때 공포는 극복될 수 있다. 포식자에게 쫓기더라도 가끔은 마주 보고 으르렁거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면에서 살펴보면 두려움은 '소유'와 연결된다. 잃을 것이 있는 존재는 약하다는 말이 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다. 자신의 생명을 넘어서는 신념을 가치를 가진 이들은 목숨을 내어 놓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장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결국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온다.
소유는 사람을 무겁게 하고 움직일 수 없게 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보수적으로 변한다. 엔트로피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변하지 않고만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움을 이기려면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생은 막연해서는 안되고 꿈은 디테일하게 그려봐야 한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리고 그것을 이뤘을 때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낼수록 우리에게는 확신이라는 것이 생긴다. 변화에 대한 보상이 명확해진다. 그러면 두려움을 뚫고 움직일 수 있다.
나는 무서운 게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무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안주하지는 않는다.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으니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나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두려움은 모두의 것이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더 큰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목숨보다 줄리엣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두려웠던 로미오였기에 단숨에 독약을 마실 수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움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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