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하면 바로 떠오르는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주옥같은 구절이다. 삶에 뜨거운 사랑은 한 번은 해봐야 하는 경험 같은 것이었던 지난날의 생각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이 질문은 사뭇 생경하기까지 하다. 연애를 억지로 할 필요는 나조차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에 사랑을 논한다면 여전히 한 번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계발과 성공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감정'은 점점 배제되어 가고 있다. 모든 마케팅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면서 정작 개인의 감정은 억누른 채 살아간다. 억눌린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이는 '우울증'을 겪고 견뎌내는 이는 '사이코패스'가 되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인간 진화의 방향이 사이코패스라고 하니 지금의 환경은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살아내기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자기 계발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한계에 부딪혀 봐라', '한계를 돌파하라' 같은 얘기라면 뜨거운 감정은 감정의 한계의 경험이다. 사랑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한 번쯤은 데일만큼 뜨거워져 보는 것은 감정의 한계를 경험하는 일일 거다. 담금질이 잘된 철이 튼튼하듯 우리의 마음도 튼튼해지지 않을까. 롤러코스트 같은 연애의 감정은 모든 것이 끝난 뒤 더욱 단단해진다. (부서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지만...)
워라밸에 이어 러라밸이다. 다른 말로 '썸만추'. 연애는 감정소모가 심하고 자기 계발의 시간을 뺏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비혼을 넘어 비연애주의가 확산되는 모양이다. '주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하게 연애에도 이해손익을 따진다. 적당한 만남. 둘 사이의 밸런스가 깨지면 아쉬움 없는 헤어짐. 조용하고 잔잔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마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인류는 매번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과실을 탐하면 벌을 받는다. 일개미도 농땡이를 부리는 녀석들이 있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 그 속에서 아이의 탄생을 보는 기쁨도,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결혼도 심지어 한없이 뜨거워질 수 있는 연애도 부정당한다. 생존의 문제는 모든 것을 배제시킨다.
연애는 사치가 되어가고 있다. 이해관계로 연결된 사랑은 손익 계산으로 상대를 대한다. 불미스러운 연애의 끝을 맞이하는 많은 뉴스들이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기에 생기는 게 아닐까. 그냥 주기만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감정에도 저울을 들이민다. 너와 나의 감정은 달러와 원화처럼 서로 다른 단위일지도 모른 채..
지금의 시대라면 나 또한 연애를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원래도 연애를 좋아하지 않았고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라면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럼에도 불현듯 찾아온다. 그 뜨거운 것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도 겨우 다스릴 수 있을 법한 것이 말이다.
연애를 명품 가방처럼 가지고만 다닐 거면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시간 낭비니까. 부자들은 자랑하는데 시간을 쏟질 않는다. 벌기에 바쁘니까. 인생에서 자신만큼 중요한 건 없다. 자신이 돌보는 것이 첫째다. 그리고 상대를 돌볼 만큼의 여유가 있다면, 어설픈 자기만족의 시간으로 흘려보낼 요량이라면, 그 뜨거운 것을 겪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자신을 관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마주한 것처럼, 펜을 드는 것을 주저하는 거라면 우선 들고 풀어봐야 한다. 그래야 풀 수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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