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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무시하는 사람들 (feat. 언내추럴)

야곰야곰+책벌레 2022. 11. 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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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구 흔들려서 '마흔'이라는 나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랐지만 늘 모자라고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늘어나는 벌이만큼 써야 하는 돈도 늘어간다. 아니 더 많이 늘어간다. 아이들은 커서 대학교에 입학이라도 하면 학비는 감당할 수 있을까를 포함한 이런저런 고민에 빠진다.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더 오르는 것은 운과 같다. 열심히 달려 쉼이 필요한 나이 40대에 우리는 더 쉼 없이 달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40에 가장 많이 아픈 것 같다.

  불안은 순식간에 나를 덮친다. 원래부터 삶의 최악을 고려하며 시뮬레이션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행복하기보다는 작전을 짜기 바쁘고 플랜이 엇나갈 때마다 새로운 작전을 짠다.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아내는 얘기한다. 그래서 사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을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여행보다 좋아한다. 

  불안은 늘 함께 하지만 절망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좋은 인생을 살았다. 우리의 고민의 70%가량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15% 정도는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5% 정도만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인 것이다. 그럼에도 작지 않은 수치인데.. 불안은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녀석이라고 하니 신경 쓰지 않는 마음을 단련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시하라 사토미가 나오는 드라마를 찾아보다 <언네추럴>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부검을 하여 범죄자를 찾는 법의관의 이야기다. 사고사로 죽는 사람이 연간 수만 명에 달하는데 부검을 하는 수는 많지 않다. 법의관 또한 많지 않다. 그중에 누가 범죄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드라마를 보다가 트럭에 갇힌 상태로 호수에 빠진 주인공은 끝까지 발신을 시도하고 결국 마지막 발신지를 파악한 동료가 크레인을 가져와 그들을 구한다. 

그녀에게 절망은 없는 걸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 나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클립으로 저장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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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절망의 순간이 찾아온다. 절망은 이루고자 하는 이상이 높을수록 더 자주 겪는다. 이상과 현실의 갭이 줄어들지 않음에 마음이 지치게 된다. 있는 힘껏 쏟아낸 에너지는 다시 채워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은 자연스레 지치게 된다. 지치고 다친 마음은 포기라는 단어를 찾아낸다. 겁이 많은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성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심리에 몸이 반응하는 일종의 방어 기제다.

  사회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갇힌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한다. 한쪽은 충격 요법과 현실적인 조언이며 다른 한쪽은 괜찮다며 위로를 전한다. 어느 쪽이 나은 것은 없다 본인이 필요한 말을 들으면 된다. 힘을 낼 수 있는데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면 서장훈 씨와 같은 '팩트 폭격기'가 필요하다. 힘을 다 쏟아내어 더 낼 힘이 없다면 김제동 씨 같은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절망에서 해쳐 나오는 능력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근데 이건 사실 학습되지 않는다. 케냐 사람들처럼 선천적인 낙천성을 자기 채찍질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 차는 있겠지만 집단적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에너지를 다 쓰지 않는 거다. 한계를 넘어야 새로운 한계가 생긴 다지만 그것은 훈련의 결과이지 실전의 방법이 아니다. 한계의 도전 뒤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성취감과 함께 자기 한계 범위를 넓힐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일은 대부분 연속선상에 있고 우리는 쉼의 주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결승전 마지막 게임 정도가 되어야 불굴의 투지를 부려볼 만한다. 정신력은 결국 체력에서 나오고 불안은 본능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이상의 것을 해내기 쉽지 않다.

 가끔은 산왕을 쓰러트린 북산의 모습을 그리는 슬램덩크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쓰러지고 싶은 날도 있다. 그것이 자신의 성취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순간에 무모할 정도로 덤벼들고 싶은 일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페이스를 조절하며 여유를 조절하자. 걱정하며 한탄하며 남은 체력마저 소모하지 말고 극 중 주인공처럼 맛있는 음식 먹고 푹 자고 에너지를 채우면 분명 조금은 더 괜찮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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