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와 스릴러라면 범죄물, 탐정물 같은 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전쟁보다 더 스릴러에 가까운 것은 없을 것이다. 모반과 암투 그리고 배신 그 모든 것이 미스터리하고 잔인하다. 작품은 공간을 전쟁의 한 복판으로 설정한다. 오다 노부나가에 대항하는 아라키 무라시게를 설정해 둠으로써 약자들의 결정체를 파고드는 균열의 조짐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지혜를 나눠주는 간베에를 설정해 둠으로써 책의 주인공이 무라시게인지 간베이인지 모호한 배경을 깔아 두고 있다. 역사와 미스터리의 완벽한 조화인 이 작품은 픽션이다. 들판을 돌진하며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된 오케하자마 전투 같은 호쾌함은 없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리더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 전국시대, 농성 중인 아라키 성 내에서 생긴 사건과 이를 해결하는 리더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리드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시대는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하라가 일본을 평정하기 직전인 듯하다. 무라시게는 오다의 가신이었으나 그에 대항한 마지막 세력이 되었다. 모리 등과 대항하기로 했으나 목숨을 구걸하는 장수들은 하나둘 오다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라키 성은 그야말로 요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군사의 사기는 시간이 흐름에 변하게 되고 무사들은 전적을 일으켜 세상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 무사에게 참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무사는 죽는다. 자식이 죽어도 일족이 가문을 남기고,
몇 대 전의 아무개가 용감하게 죽어 지금의 집안이 있는 거라고
구전될 날을 생각하면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다.
농성 중인 성에는 여러 가문들이 함께 있고 그들마다 사정이 다르다. 작품은 모두 4개의 사건을 담고 있다. 포로를 죽인 자를 찾아내는 것, 전공을 세운 자를 정하는 것, 귀한 스님의 살해 그리고 모반을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사건은 책 말미에 반전이라면 반전의 묘로 남길 수 있다.
이 작품은 치밀한 계략이 주된 재미는 아니다. 물론 창을 이용한 살인, 사건의 순서의 재배열을 통한 풀이 등은 분명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성주 무라시게의 심리며 그가 여러 가문을 통솔하고 이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곧 리더십의 문제기도 하다.
이유가 있어 저질러진 일이지만 리더의 권한을 침범한 사실에 대해 엄벌하고 또는 뉘우치게 한다. 중간 리더의 사정을 살펴 조용한 곳으로 불러 차를 나누는 명분을 제안하여 개인적으로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난세에 인간의 심리를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가. 무라시게는 도쿠카와 이에야스를 계속 생각나게 했다. 무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심리는 오다 노부나가의 반대로 하려는 자신의 신념이었다. 백성들에게 신망을 잃은 존재의 최후는 잔인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는 참는 것의 대가였고 결정은 신중했으나 단호했다.
'바람의 검심'의 아내 <토모에>가 생각나게 하는 '지요호'는 그야말로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군주는 전략가라 종교가 필요하지도 않고 종교에 의탁해서도 안된다. 종교는 개인의 안위에 비는데 군주는 자신이 안위가 아니라 수하와 백성 모두의 안위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교는 중요하다. 전략은 백성들에게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근심이 많은 이 세상에는 그렇게 저항할 수 없는 약자가 더 많은 법,
종문의 가르침에도 없는 몇 마디가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 이 세상이라면,
꾸며 낸 기적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 또한 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돌격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전쟁이 종교를 위한 매우 정치적인 구호다. 무사는 이 말에서 헤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죽은 뒤에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죽음 뒤에 극락을 가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쓴다. 무사를 다스리는데 전략이 필요하다면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종교가 필요하다.
성은 결국 함락당하고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당한다. 간베에는 성에서 구출되어 작품의 에필로그를 서술한다. 많은 장수들은 사라지고 무라시게의 종적은 알 수 없다. '지요호'는 한 떨기 꽃처럼 참수당할 때마저 고요했다고 전한다. 오다 마저 죽은 시점으로 작품을 마무리된다.
한때 NHK에서 방영하던 일본 대하드라마 '신센구미'를 본 적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신선조다. SMAP의 카토리 싱고가 주연이었지만 지금 일본의 소수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를 이끄는 야마모토 타로가 연기한 10번 조장 '하라다 사노스케'도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물론 우리 사극인 '용의 눈물'이나 '태조 왕건', '무인 시대', '불멸의 이순신'도 즐겁게 보았다. 최근에는 '태종 이방원'을 했던 것 같은데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픽션 소설은 역사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도전이 계속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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