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현찬양) - 엘릭시르

야곰야곰+책벌레 2022. 9. 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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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편의 작품이 마치 하나의 작품인 듯이 같은 등장인물에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었다. 작품의 설명을 읽지 않았다면 분명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하나의 장면이 넘어갈 때 조금 뜬금없다 싶다가도 이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수렴되곤 했다. 중간중간 조금의 상상력만 발휘한다면 말이다.

  조선 시대 경복궁에서 일어날 법한 기담을 만들어 모은 이 책은 엘릭시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누군가 들어주었기 때문에 완성되는 것이라는 말처럼 기담 또한 서로의 입에서 귀로 이어져 그것에 살이 붙기도 하고 조금씩 변해 새로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곽재식 작가의 <한국 괴물 백과>를 참고하여 궁궐의 기담을 완성해 내고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생소하면서도 기발했고, 그것을 적절하게 엮어서 잘 표현해 주었다.

  궁녀 백희는 고려에 한양에서 살았는데, 자신의 집은 도깨비 집터였고 자신의 오빠는 늘 병들어 있었지만 가계가 기울어도 어머니는 오빠를 간병했고 결국 가족 모두를 잡아먹은 도깨비는 결국 백희와 마주하게 된다.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순간 이야기를 접어 버렸지만 추후에 백희의 몸속에 자리하는 '비비'라는 괴물은 그 도깨비인 것이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도깨비 집터에 궁궐을 세우니 궁궐에는 기담이 넘쳐 났다.

  빨래터에서 빨래하다 사라진 궁녀라든지, 벼락을 맞아 타버린 궁녀 또한 그랬다. 중간에 퇴마사처럼 등장했던 강수라는 인물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환관으로 궁궐 생활을 하게 되는데, 더 이상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아서 조금 의아했다. 아무래도 이 연작 소설은 몇 편이 더 있을 것 같다. 백희는 강수를 경계하는 것에서 다음 이야기에서 백희의 존재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강수와 백희의 대립이 필요한데, 이 책에는 없다. 결국 2권이 나올 거란 얘기가 아닐까.

  춘향전의 각색이 재밌었다. 춘향은 몽룡을 기다렸지만 몽룡은 벼슬에 진출한 뒤에 기방을 드나들며 춘향을 추억팔이나 자랑에 사용했을 뿐이다. 춘향은 고장 사람들에게서 조차 손가락질을 받으며 죽음에 이르렀고 3년 넘게 남원에는 비가 내리지 않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착한 무당은 한을 품고 죽은 여인이 있느냐고 물었고, 춘향의 한을 풀려면 굿으로 되질 않고 춘향을 찬양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널리 퍼트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 뒤에야 가뭄은 사라졌다고 한다. 춘향전의 새로운 해석이 흥미로웠다.

  책의 말미에 곽재식 작가가 나와서 이 작가의 스펙트럼은 도대체 어디 까진 가며 감탄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한국 괴물 백과>를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사실 작가가의 고전의 마귀들을 찾고 스토리를 잇느라 고생했겠다 싶었지만 이런 치트키 같은 책이 존재했다니.. 한국의 <박물지> 같은 책이 있었단 말인가.. 싶었다. 나도 괴담을 쓰게 된다면 분명 참고가 될 것 같다. 쓰게 된다면 말이다.

  도깨비 집터에서 잠깐 섬뜩했을 뿐 나머지는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괴담이나 괴물이 등장한다면 잔인한 장면이 나올까 긴장하게 되는데, 그저 편안하게 지나갔다. 역시 지난 기담을 읽듯이 흥미롭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옛날이야기 같은 기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읽어보면 좋겠지만 청양고추 같은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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