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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간 중심의 행성에서 살기 위하여 (존 그린) - 뒤란

야곰야곰+책벌레 2022. 9. 1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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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부제에 인상이 깊어서 이 책이 '인류세'라는 책의 리뷰를 하는 책인 줄 알았다. 마치 책의 평과와 해설을 겸한 책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살아가며 느낀 인류세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와 견해 그리고 서평가답게 깔끔한 별점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인류세는 지구의 생태 환경이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기 시작하면서 제안되었는데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를 강조하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구의 삶에서 인간의 등장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데도 인간이 지구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과하다고도 주장하기도 한다. 

  인류세를 과학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시선 그리고 개인의 감정을 가지고 작성한 이 에세이는 뒤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류세라고 했지만 지구상에 닥쳤던 5번의 대멸종에 비하면 인간이란 재앙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흑사병, 콜레라, 말라리아 같은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구의 긴 역사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생겨났고 또 사라졌다. 인간이 6번째 대멸종의 대상이 되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환경 운동은 지구를 위한 것이기 이전에 인간이 대멸종에 이겨나가기 위한 활동이다. 그리고 이겨낼지도 모를 일이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라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늘 두렵게 만든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여전히 알 수 없다. 74년마다 돌아오는 헬리 혜성이 다음번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 아닐까. 우리는 매일 같이 새로운 향을 만들어 내고 있으면서 또한 많은 향을 잃어버리고 있다. 지구상에 향기를 가진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유행처럼 예전의 향 또한 생산되지 않기도 하니까. 우리가 맡지 못하고 사라진 향기는 얼마나 많을까.

  어떻게 되었든 인간의 활동에 의해 생겨난 것들은 좋든 나쁘든 우리의 것이다. 경작하고, 나누고, 심지어 보호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우세 종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능동적이게 혹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종을 번식시키기도 멸종시키기도 하게 되었다. 

  마리오 카트는 선두와 뒤진 자에게 다른 아이템을 준다. 게임에는 밸런싱을 위한 많은 장치들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선두에 선 자에게 더 좋은 아이템을 계속해서 제공한다. 선두와 꼴찌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너의 성공과 나의 실패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이 계속되면 게임 그 자체로부터 유저가 이탈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길 기회를 갖는 게임. 어떻게 보면 중요한 시스템이겠지만 현실에 찌든 우리는 게임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칼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간추리기는 쉽지 않다. 인류세라는 커다란 전제를 두었지만 인간의 흔적을 살펴보고 자신의 견해를 얘기한 후 별점으로 마무리 지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쪼개진 이야기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부터 거시적인 시점까지 아우르고 있다. 혜성부터 시작한 관심사는 향기 나는 스티커, 음료, 에어컨에 이어 전염병, 세균 등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예술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의 근무했던 하비, 자주 사용하는 IOS 노트 앱, 쿼티 자판 등까지 얼마나 넓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많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멋진 작가의 모습이었다.

  로버트 펜 워렌의 "인간의 끝은 앎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 앎이 자신을 구할지 죽일지는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좋았다. 자연을 관찰하고 우주를 연구하며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언젠가 닥칠 대멸종에 대비하고 있지만 그 진실의 끝에 답이 없거나 멸종으로 이어지는 확실함만이 남는다면 세상은 어떤 혼돈에 빠질까 싶기도 하다. 인류세를 모르고 살아왔을 때 인간은 발전만을 느끼며 즐겁게 전진했지만 최근에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야 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지도 모르고, 더 빨리 탈출해야 하는 시간 게임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세를 개인적인 견해로 펼친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의 변화에 인식의 변화에 그리고 환경에 변화에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할 것 같았다. 인간이 선조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다행이다. 우리가 그들을 혐오할 수 있으니까. 우리 또한 우리 후대에게 혐오스러운 존재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나의 생각 나의 인식대로 살아간다. 대신 휘둘리지는 말자.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만큼만 인지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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