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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보연) - 봄름

야곰야곰+책벌레 2022. 10. 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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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존재하는 희귀 질환은 6000 ~ 7000개에 달하며 이를 앓고 있는 사람은 인구의 약 3.5 ~ 5.9%로 2억 6천에서 4억 4천 명 정도에 이른다. 희귀병은 병에 걸린 사람도 많지 않아 치료제를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소수의 인원이 지불해야 하는 방식이라 고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고 전문가도 많지 않다. 치료제나 시술이 있다면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예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삶의 절반 이상을 백혈병과 투병한 은찬이의 이야기는 이런 문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했다.

  어른보다 더 묵묵히 병과 싸웠던 은찬이와 그 가족의 투병기는 봄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킷토 아야의 '1리터의 눈물'을 보면 희귀병의 투병에 있어 용기는 의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에게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은찬이 또한 다르지 않았다. 백혈병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는 은찬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어른도 견디기 쉽지 않은 수많은 치료들을 잘 이겨냈다. 희귀 병동은 늘 죽음이라는 단어와 멀지 않은 느낌이라 의사와 간호사에게 희망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느끼겠지만 은찬이처럼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환자를 보면 자신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보다 예뻤을 아이를 먼저 보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치료를 3번이나 받았다. 그럼에도 공포에 떨지 않고 되려 자신은 치료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으니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라 다짐하곤 했다. 틈만 나면 공부하고 틈만 나면 연습했다. 저자가 얘기하는 마치 천사가 내려왔다 다시 돌아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그야말로 '엄친아' 같은 모습이었다. 지쳐도 벌써 지쳤을 투병 생활, 가족이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은찬이의 의지 때문이었으리라.

  백혈병 치료가 힘들다는 것은 글로 보고 말로 들어 알았지만 골수 이식 이전에 자신의 면역력을 모두 제거하는 치료를 하는 어려움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신약을 적용하는 어려움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신약은 개발 단계에서는 임상 단계에 참여할 수 있기도 하다. 이것은 희귀 질환자들의 동아줄 같은 것이다. 하지만 희귀병 자체에 대한 연구 진행이 많지 않음도 안타까운 일이다. 신약이 개발되면 적용되는 것도 쉽지 않다. 세게에서 가장 비싼 약으로 알려진 척수성근위축증의 치료제 '졸겐스마'는 25억이다. 

  이런 희귀병을 앓는 사람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희귀병은 선천적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도 생길 수 있다. 희귀병을 넘어 장애라는 것 또한 언제 나에게 올지도 모를 일이다. 희귀병의 건강보험 지정으로 부담되는 몇천 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을 보면 또 씁쓸하다. 나누면 나에게 손해라는 인식이 이미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지출은 신경 쓰질 않는다. 회사의 발전보다 내 책상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지금의 인식 수준이기도 하다. 아이와 같이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에 저자는 함께 했다. 사회가 변한 건지, 사회의 변화에 작은 영향이라도 줬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사회가 뒤로 가질 않게 지지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자연은 적응하는 자만 고르고, DNA는 더 많은 퍼트릴 수 있는 성질을 택한다. 유전병은 세상에 적응하려는 DNA의 또 다른 선택이다. 초등살 모양의 적혈구는 몸에 심각한 빈혈이나 여러 가지 병을 유발하지만 말라리아가 잘 증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유전병이라는 얘기도 많다. 희귀 질병을 가진 자들은 유전자의 또 다른 선택을 받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유일하게 적자생존의 원칙을 깨는 종이다. 약한 자를 보듬고 함께 가려고 한다. 이제는 사람속 에서 유일하게 남은 종이다. 사피엔스의 전멸은 사람속의 전멸이다. 100명이 3명을 도운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 인간은 다양한 유전자가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를 생각하는 '측은지심'의 마음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바이러스가 창궐해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았던 영화 <데스노트 : L 새로운 시작>에서 처럼 희귀한 일에서 우리가 도움받을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사는 게 팍팍하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작은 마음까지 거두어드리는 사회가 되질 않으면 좋겠다. <1리터의 눈물>은 희귀병을 미화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 또한 희귀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힘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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