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시집 | 산문집 | 에세이

(서평) 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 필로우

야곰야곰+책벌레 2022. 12. 12. 07:49
반응형

  일기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작성하기 위한 글인데, 망각 일기라니 제목이 조금 독특하다. 저자는 25년 동안 일기를 써왔다. 사라지는 기억 때문에 일기를 쓰지 않으면 자신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으로 강박적으로 써왔던 것 같다. 느낌보다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려고 애를 쓴다. 일기는 기억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기록일까, 잊으려는 것에 대한 철저한 배제일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의 원제는 <일기의 끝>이다. 육아를 하며 방금의 기억이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완벽하게 잊히기도 하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의 일부는 너무 또렷하게 기억남을 느끼며 잊히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식해간다. 기억에 대한 작가의 회고를 담은 이 책은 필로우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쓰는 일기. 하지만 정작 일기에 적힌 글은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의 조각에 불가하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는가, 잊을 것을 골라내기 위해 글을 쓰는가 라는 질문이 글의 초입부터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일기 쓰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를 솎아내는 선택의 연속이다.

2000년대에 이르러 일기를 쭈욱 읽어가다 1996년도 일기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누군가 볼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보지 못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 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만 기억하고, 그 일이 전부였다는 확신을 품고 싶다.

  저자는 일기를 '망각'의 작업이라고 했을까. 기억은 회상할수록 희미해진다고 얘기하는 저자의 말에서 일기에 또렷한 기억을 남기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을 비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기에 적혀 있지 않는 얘기들은 나 스스로가 선택한 또 다른 망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도..

  일기는 작가가 유일하게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쓰는 글이다. 이런 글들 속에서 엄청난 문장이 있을까 기대도 해봤지만 그럴 리 만무하다는 저자의 독백에 잠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많은 기억을 남기고 싶지만 어느 대상에 향수에 젖어들면 그 향수에 관한 기억 속에서 길을 잃는다고 말한 어느 노 작가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여러 기억을 해내고 싶지만 결국 그 기억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잊고 싶은 것을 잊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어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되질 않는다. 일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 속에는 기억을 더 선명하게 해 줄 내용이, 혹은 기억조차 나질 않는 망각의 경험이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또 나만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책을 따라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지만 메시지는 머릿속을 둥둥 떠 다닐 뿐 또렷이 잡아내질 못하고 있다. 경험은 경험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경험이 아닌 걸까. 키스는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것의 표현인 것 같다. 과거의 기억에 의지하여 고백적 글을 써 내려가는 이들에게 해답을 알려주려 했을까. 아니면 스스로 그런 작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답을 찾은 것일까 모를 일이다.

  그저 망각된 기억이 일기를 만났을 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그것은 글의 새로운 원천이 된다는 것일까. 이런 의미 저런 의미를 다 따져도 일기는 꽤 괜찮은 작업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저자는 일기 쓰기를 그만두었다. 잊히는 기억은 그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고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을 낚아채 글을 적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얘기하는 것일까. 여러모로 헷갈리는 마무리다. 

  조금 더 느리게 음미해야 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