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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차이는 대화로 해소할 수 있을까?

야곰야곰+책벌레 2022. 8. 17.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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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r.weblogographic.com/difference-between-awareness-and-knowledge-1450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인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을 의미한다. 인식은 사물을 인지하는 상태에 개인의 판단이 가해진 상태다. 이런 개인의 판단은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고 그것은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하는 행위(혹은 작용)를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인간을 가능하게 만든 능력 중에 하나는 바로 '타자가 상상한 것을 나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나 독서 등으로 지식을 쌓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인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고 때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도 한다.

  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상상하는 것보다 겪어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믿지 않는 것도 보여주면 믿을 수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진실이라고 더 쉽게 믿기 때문이다. 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보다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 훨씬 싶기도 하고 편집된 정보와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세뇌시킬 수도 있다. 이것은 사이비 종교들이 곧잘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인식의 변화는 쉽게 만들 수는 없다.

  첫 번째로 자신이 쌓아온 경험은 그것 자체가 자존감일 수도 있다. 인식의 고착화가 오래될수록 변화는 어렵다. '심리적 관성'이라고 얘기하는 이 특성은 물리적인 특성과도 닮아 있다. 물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대 정지 마찰력을 넘어서야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마찰력이 낮아진다. 계속해서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운동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변화하는 데는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뇌가 만들어낸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을 바꾸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뇌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인식은 생존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 불리한 것을 기억한다. 생존 문제는 곧 본능이다. 지금까지 인식했던 방법이 나의 생존을 이끌었다면 그것을 변하게 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인식은 새로운 패턴의 위험에 대한 정보로 계속 수정될 수는 있다. 하지만 늘 보수적이고 조심스럽다.

  대화는 인식의 차이를 줄이는 것 이전에 인식의 차이를 잴 수 있는 방법이다. 많은 대화는 두 사람의 인식의 차이를 확실하게 할 수 있게 하며, 그렇게 하다 보면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접점으로부터 서로에게 다가갈 수는 있다. 상대의 인식을 인정해 줄 수 있게 된다.

  사물은 여러 면이 있고 서로가 바라보는 면은 다를 수 있다. 인식의 차이를 줄이는 행위는 '너도 나와 같은 면을 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보는 풍경은 그렇구나. 난 이런데'처럼 각자가 바라보는 인식을 인정해 주면 우리는 두 개의 인식이 생기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인식은 확장되고 차이도 해소될 수 있다. 

  물론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한 논쟁으로 답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인식의 차이라면, 인식의 교집합 대신 합집합을 만들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너는 그랬구나', '너는 그렇구나'라든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든지의 말들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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