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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가보겠습니다 (임은정) - 메디치미디어

야곰야곰+책벌레 2022. 8. 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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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인들의 정의로움이 어느 때보다 위태롭게 느껴진다. 그들은 항상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무결점을 위한 자기 방어는 지나치다 못해 혐오스러운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검사 선언은 그것이 국민에 닿지 않고 검찰청에 닿아 있는 것만 같아 소름 돋는다. 군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검찰이라는 칼은 새로운 권력이 되어 누구를 겨누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고 느껴지는 안타까운 세상이다.

  도가니 검사로 이름을 알린 후, 임은정 검사는 늘 검찰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검찰을 곤란하게 하거나 불의에 대해 얘기하는 곳에는 늘 임은정 검사가 있었다. 일반인으로 무섭기만 그들의 권력이 그녀라고 왜 무섭지 않았겠는가? 호랑이 굴에서 외로움 싸움을 하는 임은정 검사가 책을 낸다고 해서 바로 예약 구매를 했다.

  굉장히 격렬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순간순간을 겪었을 터인데, 책은 너무 고요하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는 허튼 힘을 낭비하지 않는 느낌처럼 고요하지만 아우라가 느껴진다. 글 속에는 분노, 혼란, 고독, 두려움, 결연함 등의 인간이라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녹아 있다. 검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녀는 여전히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지만 옆에 누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가장 선두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임은정 검사의 결의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잃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정의롭지 못해도 괜찮다는 아니 그것이 정의라고 얘기하는 조직 속에서 발버둥 치며 허우적대며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새롭게 걸을 수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려면 바람은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고요하게 그리고 초연하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시스템은 한 개인의 반대를 착각으로, 두 사람의 반대를 감응성 정신병으로 매도할 수 있지만,
세 사람이 같은 편에 서면 여러분을 함부로 하기 어려운 힘이 된다.

- 루시퍼 이펙트, 필립 짐바르도

  자신이 당하는 일을 후배들은 당하지 않게 하려고 우산이 되려고 시작되었지만, 조직 그 자체를 쇄신하는 것은 선후배를 막론하고 비난의 메시지를 쏟아 냈다. 침몰하는 거대한 배에서 뛰어내릴 용기는 가진 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임은정 검사는 가슴이 아프고 힘들지만 묵묵히 걸어왔다. 보수 정권에서는 항명자로 진보 정권에서는 부역자로 비난당했다. 자신에게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했다. 매일의 기록을 남겼고 싸우기 위해서 정보를 모왔다. 좌천되기도 직이 정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임 검사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잠든 자는 깨울 수 있지만 잠든 척하는 자는 깨울 수 없다는 표현은 지금의 검찰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다. 세월호 시국 선언을 한 교사들에게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기소하지만 정작 몇 달 전 '검찰 선진화법'을 통과시킬 때 그들이 한 행동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민들은 동영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겠는데 검찰들만 유독 판단이 어렵다고 했다. 성추행에 스폰서를 받은 검사들은 직위해제가 되지 않고 명예롭게 퇴임했다. 기소가 되지 않으면 범죄자가 아니라는 그들의 정신 승리는 서로에게 기소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이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법은 소리입니다.
법정에서 당사자의 잘못을 충고하고,
아름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소리입니다.

  검사 내부에서 임은정 검사의 글에 댓글을 달거나 동조하거나 심지어 컴퓨터를 빌려줬다는 이유로 개인 면담을 당한다. 임은정 검사에 동조하려다가도 손사래 치기 일쑤였다. 씁쓸하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걷다 보니 한 명씩 같이 해주는 분들도 생겨났다. 검찰의 미투 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검찰 내부망 그리고 법적으로 싸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임은정 검사도 검찰 내부 게시판에 이어 경향신문 칼럼을 적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책을 읽으며 정명원 검사의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검찰 내부에는 생각보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정치 검찰들의 힘이 막강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보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80%의 사건은 20%가 저지른 일이라고 하듯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시스템 그 자체의 문제일 것이다. 특수부 검사가 아니면 진급하기 어렵고 사건에는 값어치가 다르다는 그들의 판단이 놀랍지도 않다.

  고여 있으면 상하기 쉽다. 검찰의 권력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그리고 조직은 총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권력 집중적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검찰 총장을 투표로 뽑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러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대통령을 향해 '고작 5년짜리 권력'이라고 표현한 검찰 총장의 표현처럼 그들도 '5년짜리 권력'으로 만들면 어떨까? 지방선거가 실시된 후 지역 행정가를 직접 뽑은 뒤로 민원 업무가 친절해졌듯이 총장과 지방 고검장을 국민이 직업 뽑으면 그들의 권력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정치권력을 위한 수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수사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임은정 검사가 지난 10년을 투쟁하다시피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투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책의 제목은 '계속 가보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임 검사의 메시지는 '함께 가주시겠습니까?'였다. 조직에 대고 쓴소리를 한다는 것은 조직을 엄청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이지 튀어 보겠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10년 동안 흔들렸을지언정 변함없이 걸어가고 있는 임 검사에게 작은 힘이나마 될 수 있게 박수를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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