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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 살림

야곰야곰+책벌레 2022. 7. 2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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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갑작스러운 남침,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그리고 중공군의 인해전술. 우리는 딱 이만큼 배운다. 그리고 결론은 늘 반공주의와 미국에 대한 감사라도 마무리한다. 어느 날 무심코 가입한 어느 역사 카페에서 한국 전쟁의 다른 시선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맥아더를 비난하고 있었고 압록강에서 밀린 것이 인해전술이 아니라 전술 상의 패착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의 논리에 수긍하면서도 거짓 정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독서 클럽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이 올라왔다. 그 내용은 아주 오래전에 카페에서 읽었던 글과 닮아 있었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미국인의 미국이 한국전쟁을 대하는 사실에 대해 적혀 있다고 했다. 6.25에 읽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에 구입하곤 두께에 압도당해서 한 동안 서재에서 먼지만 쌓여 갔다. 하지만 광복절이 오기 전에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분노하는 순간도 눈물을 참으려 고개를 들어야 하는 순간도 존재했다. 힘이 없는 나라가 당하는 잔인한 세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한국 전쟁은 굉장히 복합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여운형 선생의 암살로 인해 민족적 지지자가 사라졌다는 것이었고 권력 집착형 이승만과 김일성의 존재가 등장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민족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가장 안타까운 점이다. 그런 관점을 덮어두고 본다면 이 작은 나라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그 나라 안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뒤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의 도움으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승전국의 존재가 되었다. 약해져 버린 영국의 뒤를 이어 세계 경찰이 되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고 미국은 아직 그렇게 커다란 존재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의 애치슨은 저항 전선을 발표하게 되는데 여기에 한국이 빠져 있었다. 한국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애치슨 라인'이 바로 이것이다. 이 발표를 스탈린은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해석하고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에게는 한국보다 중국의 장제스 정부가 더욱 중요했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은 엄청난 속도로 남침을 진행했다. 이때 미국은 전쟁 이후 국내 경기 회복을 위해 빠르게 군비를 줄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다. 변방의 아시아인들은 미군이 나타나기만 하면 벌벌 떨며 도망갈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전쟁으로 임했다. 일본군에게도 철저하게 당했던 그들은 핵폭탄이라는 무기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 한국 지형은 미군의 첨단 무기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맥아더는 훌륭한 인재는 모두 자신의 휘하에 두고 도쿄 사령부에 가두어 두었다. 전쟁 초기 낙동강까지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군의 약화, 우월주의 그리고 지원을 충분하게 하지 않은 도쿄 사령부에 있었다.

  맥아더는 전쟁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의 승리. 무엇보다 드라마틱한 승리를 좋아했다. 그런 점에서 인천 상륙작전은 처음부터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블루 하트'라고 명명한 작전을 조금 수정해 인천 상륙작전으로 실행해 냈다. 인천 상륙작전은 굉장한 위험한 작전이기도 하였고 굉장히 불행한 전투이기도 했다. 혹자는 맥아더는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한 뒤 수장되었다면 그의 명성에도 한국 전쟁에도 모두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 상륙작전은 기습 작전이었지만 도쿄에서는 모두가 아는 작전이었다. 맥아더는 공공연히 연설을 했고 심지어 상륙작전을 할 때 기자를 태우려고 까지 했다. 인천은 방어하는 측에는 요새와 같았고 이론 상으로 필요한 병력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기도 했다. 더욱이 상륙작전을 위해 부대를 도쿄에 묶어 두었기 때문에 낙동강에서는 암울하고 치열한 전투를 해야만 했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은 순전 운이었다. 마오쩌둥은 일본에서의 상황을 보고 정보를 캐고 있었고 맥아더의 기질을 파악해 인천을 사수하라고 김일성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북한은 중국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그런 조언을 들을 만큼 김일성은 똑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 때문에 맥아더의 독단을 막을 방법은 점점 사라졌다.

  맥아더는 자신의 치적에만 관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 서울 수복할 때 다른 장군들은 서울 북쪽을 끊어서 포위하자고 했지만 날짜까지 찍어 수복하라는 통에 엄청난 포탄들을 서울에 쏟아부었다. 이때 여러 장군들은 서울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고 했다. 맥아더는 서울을 일부 수복하자마자 서울을 탈환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이 부서지든 부하들이 죽어가든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맥아더의 업적은 인천 상륙작전 단 하나뿐이었다. 서울에서 진군하면 금방 도달하는 원산에도 굳이 상륙작전을 진행했다. 원산 앞바다에는 지뢰가 엄청 깔려 있어 상륙작전이 어렵다고 했는데 남의 말은 듣지 않는 맥아더였다. 결국 원산 앞바다에서 미 해병대는 열흘 넘게 지뢰를 제거했고 그 사이 한국군은 걸어서 원산에 입성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3.8선을 넘으면 소련이나 중국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속도 조절을 하라는 미정부의 말을 무시하고 군대를 쪼개어 북진을 명령했다. 맥아더는 압록강을 넘어 연변이나 사할린까지 올라갈 기세였다. 하지만 그 사이 중공군은 이미 한반도에 숨어 있었고 미군이 그물 속에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공공연히 발견된 중공군을 사령부는 무시했다. 이는 수천 명의 미군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맥아더는 늘 도쿄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한국에 와서는 거창한 연설만 하고 이내 도쿄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1박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산세가 얼마나 험한지,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그는 몰랐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중공군의 규모와 전투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명예만 위해 군대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의 독단에 그의 주위에는 아첨꾼만 득실대었고 전장의 정보는 교묘하게 수정되기도 했다. 맥아더는 미 대통령의 지시를 5번 이상 어겼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겁쟁이나 애송이로 보는 것 같았다.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전쟁의 참여는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경우에는 자기 입맛대로 조정할 수 있지만 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를 세운 마오쩌둥은 달가울 수 없었다. 하나의 공산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스탈린에게 독립적인 지도자는 언제나 걸림돌이었다. 그는 중국의 전쟁을 종용하기만 할 뿐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중국과 미국의 소모전을 그저 즐겁게 바라볼 뿐이었다.

  중국의 장제스는 엄청난 규모의 국민당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의지는 부족했고 단지 호위 호식하는 것에만 관심 있는 듯했다. 언제나 미국에 손을 벌렸고 전쟁에서는 언제나 도망 다녔다. 마오쩌둥은 우리의 무기고는 장제스의 국미당이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미군의 무기를 팔아치운 베트민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하지만 미국민들은 장제스의 중국에 애정이 있었고 끊임없이 지원하길 원했던 것 같다. 사실 장제스가 제대로 중국을 만들었다면 지금의 중국도 한국 전쟁도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공군에게 심하게 밀리던 미군을 바로 잡은 것은 새로 부임한 리지웨이였고 지평리 전투를 이겨낸 프리먼이었다. 그들은 중공군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대였다. 이 전투는 수적으로 우세한 적을 맞서는 적절한 예시로 미군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공군에게는 펑더화이라는 걸출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여러모로 리지웨이랑 비슷했다. 냉철했지만 부하들을 아꼈다. 철저하게 정보에 의해서 움직였다. 아마 둘의 위치를 바꿔놓고 싸웠다고 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았으리라 저자는 얘기한다. 전쟁이 끝난 후 기근에 시달리는 소작농을 대변을 하다가 마오쩌둥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처형당하고 만다. 전쟁을 이끌던 영웅의 초라한 퇴장이었다.

  중공군의 승리는 마오쩌둥의 독단을 만들었다. 이제 그는 중국의 맥아더가 된 것이다. 그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어려워졌고 정보는 그의 입맛에 맞게 변하게 된다. 세계에 중국의 위대함을 심으려 했던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명령을 했다. 혁명을 위해서는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유와 함께 말이다.

  이 지지부진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맥아더는 그때마다 방해했다. 중국을 모욕하면서 협상을 결열 시켰다. 결국 트루먼은 맥아더를 해임시키기에 이르려고 맥아더의 본색이 알려지면서 그 또한 초라한 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들어선 미정부는 중국과 휴전에 들어가는 협의를 진행했다. 때마침 스탈린도 사망하여 빠르게 진전되었다. 이때 이승만은 강제 이송될 포로들을 풀어줘 버리면서 휴전을 방해했지만 전쟁을 그만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이 전쟁은 사람들 속에서 빠르게 잊혀 갔다. 미국은 전쟁 이후의 한국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한국 정부의 부패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도 군대의 현대화를 이루고 미국으로 향한 유학 등을 통해서 자유와 민주주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역동적인 사회는 근대 역사에서 빠른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주었다. 그에 반해 체제를 만드는 것을 잘하는 소련은 북한을 빠르게 전체주의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중국은 전쟁 동안 지원을 하지 않은 소련에 분노하였고 결국 중소분쟁까지 이르는 시발점이 되었다.

  참전 용사들은 전쟁에 대해 얘기를 잘하지 않았지만 그들끼리는 끈끈한 유대를 형성했고 또한 잘한 일이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듣고 싶은 사람도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발전된 한국을 보며 잘한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이고 자신을 들을 영웅 대접해 주는 한국인들에게 또한 감사한다. 50년이 지나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날의 기억을 하나둘씩 책으로 엮었다. 그 책들을 모으면 작은 도서관을 만들 만큼 많았다. 그 수많은 전장을 누린 수많은 용사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맥아더와 인천 상륙작전으로만 알고 있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훌륭한 장군은 부대를 사랑하고 또한 냉철했다. 지휘관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데 게으름이 없어야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은 부하를 위해 기꺼이 눈물을 흘릴 줄도 알았다. 그런 지휘관들이 이끈 부대는 전투를 헛되이 하지 않았고 부대원에게 기억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독단을 내리던 장군들은 부하들을 위험 속에 밀어 넣었고 전쟁에서 커다란 구멍을 만들던 존재였다. 분노를 억누르며 읽어나가야 할 정도였다. 낙동강의 처절했던 전투, 청천강과 장진호 그리고 원주. 그 어려웠던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장렬히 전사하는 장면들을 읽을 때에는 눈물을 참으려 책에서 눈을 몇 번이나 떼어야 했다.

  책을 읽고 나서 한국 전쟁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동안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한국 전쟁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있었다. 또 많은 책들이 품절이 되었다. 우리는 근대 역사를 들추어내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하는 것 같다. 프랑스가 시민 혁명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이 한국 전쟁을 자신들이 미국과 대응하게 된 전투라고 치켜세우는 것과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이뤄진 전투에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일까? 청산되지 못했던 부패 세력들이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일까?

  고대 역사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뿌리라면 근대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얘기해줄 소중한 역사다. 그동안 먹고살고 힘들다는 이유로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한 시 했던 것이 부끄러워 부단히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역사를 솔직히 내어 놓고 과오를 짚어가며 정리할 필요도 느낀다. 수많은 전투에서 죽어간 그들의 순수한 마음과 처절했던 스토리에서 더 많은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듯이, 위대한 한 사람의 치적에 금이 가더라도 그것을 대한 마음은 오히려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일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말미에 적혀 있듯 우리는 우수한 민족이고 노력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길 응원하고 또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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