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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 동서문화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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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굉장한 호기심에 책을 덜컥 구매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대단한 선동가의 글이기 때문에 쉽게 열어볼 수 없었다. 게다 엄청 두껍기도 하다. 어느 정도의 마음가짐이 생긴 후 과감하게 열어 보았다. 그의 행동은 악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에 이의는 없다. 다만 히틀러라는 선동가는 어떤 마음으로 전면에 나설 수 있었으며 마지막까지 전쟁을 놓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모티베이션이 작용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의 투쟁은 엄청나게 가파르게 전면에 나타난 히틀러에 대한 호기심으로 15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독일에서는 네오나치당의 등장으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해외로 팔려나간 책들은 여전히 존재했으므로 이렇게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위험성을 알리는 듯이 80페이지에 달하는 서문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독일 사람들의 히틀러에 대한 혐오는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것이 서문의 내용이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속에는 게르만족의 위대함과 위대한 민족을 위한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당당하게 드러나 있다. 독일 사람들 집에 한 권씩은 있었다는 이 책을 독일 사람들은 아무도 읽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은 곧 전쟁을 방치했다는 공범의 죄책감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의 투쟁>은 없애지 못하고 숨겨 놓는 것이었다. 그냥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왜 이 책은 철저하고 분석하고 비판하지 않는 것일까? 비판 교육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는 독일조차도 꺼내기 무서운 공포스러운 책인 것인가 궁금할 뿐이다.

  히틀러의 사상은 크게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로 나눌 수 있다.

  반유대주의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종일관 유대인을 벌레 취급하는 문장에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유대인은 국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민족이 터를 잡고 생산을 시작하면 그 속에 파고들어 상업과 금융을 독차지하고 원래의 민족을 가난 속에 밀어 넣는다고 생각했다. 돈을 차지한 그들은 높은 지위의 사람들과 결탁하고 국가를 국가답지 않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민족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사회 악으로 히틀러는 생각한 모양이다.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는 국가사회주의로 확장되고 독일 시민에게는 선민사상과 순혈주의를 지향하길 바란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은 피를 더럽히는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국가는 인종의 보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수한 인종은 우수한 인종끼리 번식을 해야 하고 그들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 독일은 국가 시민의 번창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식량문제와 영토문제를 위해서 과감히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은 국가 내에서 이뤄내야 한다는 점도 빠트리지 않았다.

  사실 전쟁에 대한 투지가 드러나지 않는 1권의 1부만 보면 히틀러의 생각에 독일인들이 환호했을만했다. 이것은 트럼프에 열광했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 시민에 기생하는 유대인을 걷어내고 시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한다. 직업의 위아래는 없고 모두 독일 시민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경영자는 노동자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존경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지금의 양극화 시대에도 솔깃한 제안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에 조심할 점은 바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점에 있다. 그의 민주주의 비판은 민주주의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 선동의 첫 번째 조건은 하나의 적을 만들어 주는 것 두 번째 조건은 반론에 대한 준비를 하고 상대가 반론하기 전에 선수 쳐서 그의 것이 아무것도 아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에 있다. 공화정이나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결권에 따라가는 것으로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 전면에 나와서 결국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고 하며 그들은 다수의 묻어서 책임을 회피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식의 얘기를 한다. 지도자는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고 임해야 할 때 창의적이고 부단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게도 대중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으며, 게으르기 때문에 그들 다수 의견이 올바르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한다. 책을 읽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믿어버리고 그리 남은 대부분의 사람은 아예 믿으려 들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를 하며 책을 읽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며 민주주의는 이들에게 좋지 않은 제도라는 것이다. 우둔한 대중을 이끌기 위해서는 단순한 카피라이터와 선동이 필요하다. 책은 자신의 신념을 더 깊게 하는 것일 뿐 반대 편의 사람에게는 읽히지조차 하지 않는다. 역사는 위대한 연설가에 의해서 쓰였다고 히틀러는 얘기한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는 신념을 상실하고 경제로 임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영국은 '자유'라는 것으로 사람을 모았지만 독일은 그렇지 못했다. 돈의 논리에 의해서 전쟁을 하면 그 원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히틀러는 그 원인도 유대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래서 독일인의 인종에 대한 높은 프라이드를 고취시켜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얘기했다.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는 결국 민족주의를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 같다.

  전쟁은 히틀러가 그렇게 싫어했던 유대인의 이탈. 이탈리아의 배신. 러시아의 동맹 해제 등으로 마무리된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잘 살폈다면 '핵무기'가 독일에서부터 쏘아 올려졌을지 모르겠지만, 유대인이 있었다면 그의 국가사회주의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전면전으로 항복할 바에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전쟁을 임한다. 그것은 계몽되지 못한 독일인에 대한 분노인지, 그 분노를 이어 다음 세대에 전하는 메시지인지는 히틀러만이 알 것이다.

  책을 읽으며 분노하는 자는 선동당하기 쉽구나라는 생각을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면 다른 나쁜 것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작금의 정치도 어찌 보면 선동의 정치인 것 같다. 세상을 살피고 조금씩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악랄함을 인지하려면 깨어 있는 방법밖에 없는 듯하다. 히틀러가 말한 우둔한 대중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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