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생각>이라는 책이 나온 지 10년. 저자는 그 뒤를 잇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생각의 잡음>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일관적이지 않는 판단이 생기는 이유와 그것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설레며 읽던 <생각의 생각>보다는 조금 덜 재밌고 덜 신선했지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판단이라는 것은 사고와 다른 아주 좁은 개념이지만 인간은 늘 판단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판단은 인간의 마음을 이용한 심리적 측정 같은 것이다. 대상에 점수를 부여하나 점수로 표현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판단은 연산이 아니기 때문에 규칙이 없다. 마음의 상태, 주변의 영향 등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은 세상에 비일비재하다.
잡음은 제거해야 하는 곳과 필요한 곳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 잡음은 존재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라 손을 깨끗이 씻거나 마스크를 쓰는 행위로 예방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바이러스를 예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분명 효과를 보고 있다. 책에서는 이런 행위를 <결정 위생>이라고 한다. 번역을 해서 그런지 멋스럽지 않지만 이해는 충분히 된다.
판단이 있는 곳에는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범죄에 관한 뉴스의 댓글에는 늘 누구는 3년이고 누구는 집행유예냐며 따지는 글이 많다. 형량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판단자의 역량과 성향에 따라서 다른 결정을 내린다. 똑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의사는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린다. 의료계에서 세컨드 오피니언은 어쩜 당연하고 판결에서 3심도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이런 잡음을 줄이기 위해서 형량의 범위를 줄이고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자 형량의 잡음이 줄었다. 하지만 판사들은 기계적으로 일했고 의욕도 많이 꺾였다. 잡음을 줄이는데 가장 큰 반발은 이런 마음이다.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고 또 그로 인해서 자존감을 가진다. 때로는 상대의 사정을 들어주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며 존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판단의 잡음은 개인의 존엄을 유지하는데 유효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규범은 사람들의 생각을 좁게 만든다. 판단의 잡음은 제거할 수는 있지만 사기와 팀워크는 저하시킬지도 모른다. 잡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적인 것과 동시에 인간의 인식의 변화기 필요하다.
나라는 사람은 늘 똑같이 않다. 판단의 일관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게 된다. '나는 오늘의 다른 누군가보다 어제의 나와 더 비슷한 사람이다'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 깊다. 잡음을 없애려면 결국 규칙을 만들고 필요에 따라 컴퓨터나 AI의 지원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의 행동을 학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향적일 수 있고 잡음이 섞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보다는 덜 편향적이고 일관성을 유지한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독립성을 가지고 토론하고 결정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그들이 내놓은 의견의 평균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은 독립된 지혜는 분명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정반대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어보는 습관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관적인 생각을 잠깐 멈출 수 있어야 하고 증거와 통계를 느리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합리적 판단을 위한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미 일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잡음으로부터 인간은 새로운 생각으로 진입하기도 한다. 잡음은 모든 것에 나쁜 것도 아니며 제거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면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잡음으로 인한 손실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잡음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의료, 재판, 면접, 평가 등의 많은 공정이 필요한 부분에서 잡음은 분명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상관관계보다 인과관계로 사고하는 인간에게 통계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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