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스캔들러스 (문은숙) - 동아 & 발해

야곰야곰+책벌레 2022. 6. 2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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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향 로맨스 웹소설을 읽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최근에 보았던 여성향 로맨스의 정석을 본듯한 기분이다. 전의 남자와 헤어지는 설정이 있어야 하지만 여성의 잘못이 아니여야 한다. 적어도 주인공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낄 만큼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과 완벽한 남성상의 설정과 함께 여성에게 무심해한다. 가질 것 다 가진 철벽남 정도 될까. 그리고 수동적이지 않은 여성상과 매력. 외모로 반해서는 안 되는 설정. 여성향 로맨스의 법칙은 이렇게 녹여내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로 독자를 끌고 가는 책이기 때문에 읽음에도 막힘없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뭔가 알 것 같은데 계속 읽게 되는 기분은 흡사 무협지를 읽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남자들이 무협지를 읽는 기분이 여자들이 이런 로맨스를 읽는 기분과 같겠구나 싶었다. 

  이 작품은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모티브로 작성되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사교계의 허영과 성적 욕망, 부패한 사랑을 표현한다. 뺏고 뺏기는 사랑과 절망. 그 속에서 이뤄지는 신분 상승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중견 기업의 서녀로 태어난 진세빈이 은평 그룹의 적자 윤정헌과의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을 그렸다. 그녀는 작품 내에서 '리제'라고 불리는데 자신의 어머니가 아들을 놓지 못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결국 참수형에 당하는 슬픔을 가진 엘리자베스 1세를 투영했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없었지만 군주로서의 롤 모델로 삼아 약한 나라 영국을 단숨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리제 또한 그런 '군주'의 모습을 많이 투영했다. 

  그런 리제 옆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투영한 듯한 '마리'와 잔다르크(중세 프랑스어, 주안 다르크)를 투영한 듯한 '조안'이 있었다. 셋의 캐미와 강건해 보이지만 유리처럼 깨져버릴 듯한 '리제'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철저하게 여성의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주체적인 여성상 그리고 그런 여성에 맞을 법한 남성상을 만들어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은평 그룹 회장인 '윤 회장'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지만...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기분이었고 여성향 로맨스를 잘 본 듯하다. 예전에 읽었던 달달한 로맨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만 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이런 소설이 분명 인기가 있을 듯하다. 정말 시시콜콜하고 텐션 떨어지지 않는 여성들의 대화를 듣는 듯한 기분과 그네들의 대화의 스타일 등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는 옷과 장신구의 이름들 때문에 고전보다 더 많은 어휘력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에 회색의 루스한 니트 케이프를 걸치고
베이지색 트위드 치마에 좀 더 진한 카멜 색의 롱부츠를 신은 시크한 모습이었다.

...
흑진주 초커에 검은 장미 코르사주가 달린 하얀 모직 투피스를 걸치고,
블랙 트리밍 장식이 있는 흰 토트백을 손에 든 조안은...

  무협지를 읽으려면 무협지만의 한자어나 사자성어에 익숙해야 읽기 편하다. 남자들은 그것들이 익숙하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여성향 로맨스는 또 다른 이휘가 필요하다. 그냥 지나치며 읽어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아 뭔가 대단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그래 아름답겠지 하며 넘어가야 하는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랑에 허영 한 스푼을 첨가하면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 로맨스도 굉장히 많은 것들을 참고하고 인용하는구나 싶었다. 사람의 심리를 얘기하는데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박사'의 말이 인용되는 것이나 일본 여러 작가의 호러 미스터리도 잠깐씩 보이곤 했다. 어떤 장르를 쓰건 작가의 독서의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간접으로도 느꼈다.

  사유를 위한 장르는 아니지만, 여가를 즐기기에는 부족함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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