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미스터리. 내가 읽은 미스터리 책 중에서 이런 장르가 있었던가. 64의 섬세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긴장감을 느끼며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의 대단함을 느꼈었다. 그런 와중에 '빛의 현관만큼 좋지는 않네요'는 후기는 눈에 확 들어왔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64가 평가절하를 받는지 궁금했다.
설정은 한 인물을 찾는 과정을 그렸지만 그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는 작가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던 것일까. 여행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무려 7년의 세월을 들여 다듬었다. 스토리는 동일하지만 원래의 문장은 10 퍼센트도 남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 작가도 자신에게 필요한 그 한 작품을 위해 피나게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주인공 아오세는 건축가다. 댐에서 틀장이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건축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에게는 인생의 기로에서 돌아갈 원점 같은 고향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건축가가 되었지만 버블 경기 시대에 사무소에서 나오게 되고 힘든 삶을 보냈다. 친구 오카지마의 사무실에 들어가 영세하지만 건축가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대적인 건축을 지향하던 아오세와 전통적인 목조 건축을 지향하던 아내 유카리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아오세 본인의 내적 갈등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알 수 없는 의뢰 '건축가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는 홀린 듯 미친 듯이 일했다. 돌아가고 싶은 원점 '노스 라이트(North Light)'가 깃든 집을 지었다. 시간을 남기는 집을 완성한 것이다.
언젠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을.
아오세는 우연히 자신이 지은 집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고뇌에 빠진다. 아름다운 집과 살기 좋은 집은 다른 것이라며 집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면 건축가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되고,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요시노를 만나 집에 대해 직접 듣고 싶었다. 아오세는 그의 흔적을 추적하다 위대한 건축가 타우트의 흔적도 함께 좇게 된다.
예술가 '후지미야 하야코'의 기념관 에피소드를 겪으며 예술가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계속해서 채워가는 사람이며 타우트의 흔적에서 예술가는 자신이 돌아갈 하나의 원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만든 예술가가 돌아가야 할 곳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살인, 범죄가 없어도 사건은 더없이 치밀했고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문장이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전작 64와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어 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된 사람에게
이정표 같은 빛이 내리쬐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64를 탈고 후 맞이한 건강 악화와 지독한 슬럼프에서 찾은 돌아가야 할 이정표는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인생을 자신의 의지로 살고 있는지를 되묻고, 절망 속을 살았더라도 언젠가 그 삶에서 '의미'를 찾아낸다면 그 또한 '재기'라고 말하는 작가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조직과 범죄 그리고 개인의 틀에서 벗어나 가족과 사회 그리고 예술의 범주로 튀어버린 작품이지만 미스터리가 아닌 듯했지만 미스터리인 독특한 '휴먼 미스터리'라는 장르라고 얘기되는 새로운 작품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이 그에게 돌아갈 의미 있는 곳이 되었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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