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교육 | 육아

엄마 학교 (서형숙) - 큰솔

야곰야곰+책벌레 2022. 6. 2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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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곳이 많다. 아이를 놓고도 보면 기저귀를 간다던지 젖병을 소독한다던지 심지어 가슴 마사지를 한다던지 혹은 이유식과 일반식 등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늘 엄마(혹은 아빠)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다. 아이를 놓고 얼마나 행복하게 키울까만 고민한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런 엄마의 방법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서형숙 작가의 대단함에 감탄하는 책이었다. 한때 열풍을 몰고 왔던 책이라 유심히 읽어보았지만 작가에 대한 존경심만 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완벽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용감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밑바탕에는 아이는 부모와 다르게 자랄 것이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육아는 할머니처럼 하라'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고 작은 성취에도 큰 칭찬을 안겨준다. 재촉하는 일이 없고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존경해 준다. 예전 어머니의 말에는 "얘야 내가 뭘 알겠어.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것이 있었다. 방임 같은 이 말은 생각보다 인정의 의미가 담겨 있다. 최근에 우리의 말은 "네가 뭘 알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무시가 담겨 있다. 어떤 육아가 정답일까?

  현대 사회에서 아이는 부모의 자존심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게임 속에 존재하는 캐릭터처럼 나의 캐릭터의 우수함은 그 세계에서의 나의 자존감이다. 양육자의 세계에서 아이는 부모의 자존심이 된 듯하다. 아이에게 부모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다. 나만해도 어릴 때 배우지 못한 악기에 대한 욕망 때문인지 피아노 학원 같은 곳은 거리낌 없이 보내주지만 학원을 다니지 곧잘 했던 수학에 대해서는 '그건 혼자 해도 돼'라는 인식이 있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노는 것에 인색하지 않지만, 거대한 사교육의 파도 속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는 분이 학기 초에 공개 수업에 참여했다고 했다. 연신 시끄럽게 구는 엄마의 주위로 다른 엄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서 참관하는 엄마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그 엄마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 학기 그 엄마는 모든 엄마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원래 내색을 잘 안 하던 그 엄마는 전교 일 등을 하는 아이의 엄마였던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아이의 덕택에 세간의 관심 속에 놓이기도 한다. 스스로 할 수 없었던 일을 아이를 통해서 할 수 있게 되니 아이에게 더욱 엄해지는지는도 모르겠다. 그것이 얼마나 열등의식에 절어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요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의 육아법은 이상적이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육아법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들 이렇게 했었다. 먹고사는 문제로 이어진 치열한 사회는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교육을 시켜서 먹고살게 없는 것인지 먹고살게 없어서 교육을 시키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올가미에 걸린 동물처럼 바둥댈수록 목이 조이는 형국은 아닐지. 사교육비에 힘든 삶을 사는 부모와 그 기대를 어깨에 지고 사는 아이. 모두가 불행한 사회다.

  예전에 책을 읽다 이런 구문을 보았다. 사교육에 투입하는 자본으로 나중에 아이와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밑천으로 쓰라고 아이가 기발한 상상을 해도 그것을 실행할 밑천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4 ~ 5억 들여서 학원비 대학교 등록비,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과 아이가 자랐을 때 점포를 얻어 준다거나 심지어 굴삭기를 사주는 것. 어느 것이 아이의 경제생활에 유리한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아이의 인권은 행복하게 자랄 권리.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권리가 아닐까 싶다. 국영수와는 성향이 맞지 않은 아이들까지 국영수를 잘하지 못해서 자멸에 빠진다. 심지어 잘하는 아이들까지 더 잘하지 못해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슬픈 현실이다. 작가는 험난한 교육 생태계 속에서 나부터 바뀌어야지 하는 신념으로 육아를 이어나갔다. 아이가 잘 자란 덕분에 자신의 이야기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겸손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칸에 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처럼 육아는 매 순간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혼자서도 잘 해내갈 수 있도록 경험하게 해 주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부모의 주된 역할이다. 아이의 앞길의 장애물을 걷어주는 불도저형이나 아이를 잘 살 것 같은 곳으로 실어 날라주는 헬리콥터형은 부모 자신을 평생 옥죄는 것이다. 대학교에 가서도 과외를 받아야 하는 아이가 많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세상에는 스승이 많다. 부모가 간섭하면 할수록 아이는 부모 이상으로 자랄 수 없다고 했다. 자연을 선생님으로 두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자신만을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영원한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도록 그리고 부모와 아이의 현재의 행복에 집중할 수 있다면 좋은 육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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