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 장수연 PD의 아이를 키우며 겪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생각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임신부터 아이를 키우는 순간순간의 기록이 담겨 있는 동시에 느낀 점, 자신만의 생각 더 나아가 사회 제도까지 얘기하고 있다. 저자도 자신이 책을 써도 될지 고민하였다고 했지만 우연히 카페 화장실에 버려진 임신테스트기를 보게 되었다. 아이를 지우려 했던 자신이 결국 그것을 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육아를 하며 경험한 여러 가지를 얘기하며 그 불안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브로커'의 감독을 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피소드는 글을 적는 이유를 더 했다. 그는 아버지의 빚에 관한 이야기를 썼는데, 누나가 그를 불러 놓고 '우리의 추억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반성은커녕 멋진 말이라며 대사로 써야겠다는 생각만을 했지만 말이다.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에세이가 호불호가 갈림에도 특별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육아를 견디며 살아온 워킹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냈고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서 읽은 책들을 인용하고 주위 사람들의 조언도 함께 담았다. 단순히 육아 에세이라기보다는 워킹맘 에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부러웠던 점은 서천덕 님 같은 분에게 직접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었다.
모든 육아의 출발은 '개별적 자아'에서 출발하게 된다. 또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하고 나의 방식이 모두 그들의 방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다그치게 되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단순히 삶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얘기한다. 돈을 벌고 번 만큼 아이에게 투자를 하는 것. 그것은 잘 살아가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생존 경쟁에서 지지 말라고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라고 고민하는 모습에서 반박하기는 쉽지 않았다.
많은 엄마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그것에 콧웃음 치며 나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만만해도 막상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해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으로 가는 마음이라던지 고부간의 트러블도 아빠에 대한 얘기도 육아를 하는 입장이라면 끄덕일 수 있는 얘기였다. 직장을 관두고 육아를 전담해야 하나라는 끊임없는 갈등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워킹맘들의 고민이 아닐까 싶었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아이에 완전히 귀속되는 삶이다. 나의 가치를 잃어가는 느낌에 너무 기분이 안 좋은 것이다. 아이는 보살펴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엄마는 직장에서 뒤처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육아에 전념하는 엄마들도 똑같다. 경제력,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자기 붕괴다.
책은 단편적인 육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육아를 하는 고통, 노 키즈 존과 같은 의식하지 못하는 차별, 아빠들의 육아 휴직에 참여 못하는 점 그리고 여성 차별까지 얘기하는 아이를 키우는 삶에 대한 넓은 이해와 비판 그리고 고찰이 담겨 있다. 모든 아빠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내 생각과 많이 닮아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방지하려고 하는 노력 대신에 생기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까지도.
작가의 남편은 생각보다 많이 트인 사람인 것 같았다. 싸움도 많이 하지만 남편의 포용력에 감사하는 부분도 많았다. 아이와 놀아준다고 생각하면 힘들다고 했다. 같이 논다고 생각해야 힘들지 않다고 했다. 집안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 되어야 불평 없이 할 수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안일 안 하는 남자는 집에서 쫓겨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서인지 이 부분은 확실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아내가 더 많이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육아를 대부분 여성이 하기 때문에 육아 에세이도 대부분 여성이 쓴다. 이 책은 여성들 중에서도 워킹맘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왜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옛말에도 아이를 하나를 키우려면 고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더우먼이 되려고 하는 대한민국 워킹맘들에게 추천한다. ( 사실 아빠들은 뭐라도 많이 읽으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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