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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 (박성민) - 시와서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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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을 듣고 처음 만나는 대부분의 작품은 <인간실격>이 아닐까 한다. 다자이가 죽은 해에 발간된 이 책은 어둡고 외롭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평 혹은 작가 소개에도 우울함에 대한 설명은 빠지지 않는다. 그는 인간 내면의 그림자만을 쫓던 작가일까.

  <인간실격>을 읽고 그의 작품이 왜 그토록 박수를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독자의 기분까지 잡아먹으려 덤비는 그 문장들을 읽으며 고통은 고통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면이 있는 게 아닐까 궁금해서 <만년>과 <사양>을 구매했다. 

  두 책을 접하기 전,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의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적인 작품과 더불어 발표하지 않은 문장이나 투고한 글 등에서 좋은 문장을 발췌해 두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을 모두 읽어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랑,
이라고 썼더니,
그 뒤로 쓸 수가 없었다.

  책을 넘기자마자 만난 이 문장에서 염세주의적인 글을 쓴다는 사람의 문장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내 가슴에 불꽃은 당신이 피운 것이니, 당신이 끄고 가주라고 애원하는 글귀나 가슴을 갈라 보여주고 싶을 만큼의 사랑을 가지고 있더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만함이나 우쭐함이라고 얘기한다. 진실은 행동이다라는 그의 모습은 <인간실격>에서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제비꽃입니다.

시시하네.
시시한 겁니다.

  베토벤이 최고니 리스트는 이류니 하며 침을 튀겨가며 싸워도 대중들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들을 뿐이다라는 글귀가 예술은 생각보다 그렇게 고귀한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예술가는 원래 추한 모습이고 <미운 오리 새끼>의 백조처럼 진정한 모습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그저 추하게 보이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추함을 견뎌낼 수 있어야 비로소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어른이란 외로운 사람이다.
서로 사랑하고 있어도 조심하며

남남처럼 서먹서먹하게 대해야 한다.

  사람의 순진함은 모두 '연기'나 '바보'라고 말하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의 머리를 탁 때리는 자신의 딸을 보며 어떻게 이런 순진함이 귀한 건지 묻는다. 감각만의 인간은 '악귀'와 비슷하고 어떻게든 윤리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모습은 그가 위트가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어른이란 외로운 사람들이고 존경이란 친근함을 없애고 외롭게 바라보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조금 씁쓸하면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것이 다자이의 시각이라면 그의 고뇌와 우울함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를 할 수 있었기도 했다.

  안락한 삶을 살 때는 절망의 시를 짓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 때는 생의 기쁨을 쓰고 또 쓴다.

  어떻게 보면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삶이었지만 그는 그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판도라의 상자 구석에 박혀 있던 행복이라는 것이 그저 풍요로움이 아니라 상자 속에 함께 했던 수많은 고통들과 함께여야 빛이 나는 존재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행복은 비애의 강바닥 속에 가라앉아 어렴풋이 빛나는 사금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그는 하루를 꽉 채워 살아가고 싶었고 즐겁고 다정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유서라고 얘기하던 <만년>을 발표하고도 13년을 더 살아갔다. 그는 늘 농담처럼 죽음을 얘기했고 그가 실종되었을 때에도 그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은 그의 그저 다시 나타나길 바라고 있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늘 사람을 만났고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를 위트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깊은 우울과 고통의 글귀만 가득할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달리 희망을 얘기하는 모습에 그의 글이 조금 더 이해가 가기도 했다. 희망을 얘기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 같은 것도 느꼈다. <만년>이라는 책의 기대가 더욱 올라갔다. 다른 작가였다면 그런 작품을 쓰면 쓰러질 거라는 감상도 한몫 하긴 했지만 더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행복하길 바라지만, 반대로 늘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며 살아간다는 그의 말에 여운이 남았고 왜 지금의 시대에 다시 한번 조명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문명의 과실을 맛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오늘도 자신을 학대하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생을 이끌고 있는 게 아닐까. 개인이 소중하다는 외침 속에서도 우리는 그저 인간이라는 탑을 지탱하는 그저 하나의 돌멩이 같은 존재를 벗어날 수 없다. 

  문명 공동체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어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인간이 <인간실격> 일지 그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부합하며 살아가기로 한 인간이 <인간실격> 일지는 개인의 판단이지만 분명 그의 위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 나도 점점 더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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