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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화수감자의 연애편지 (루나) - 소울마크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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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슈들이 뿌려지는 가운데 꽤나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주제를 다룬 책이었다. 옥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평화로운 분위기였고 그저 선한 자가 묵묵히 지내는 모습에 어떤 이유로 감옥에 들어왔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했기 때문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때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사람들의 병역 거부가 한 동안 이슈가 되었다. 그때 사회정서로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고, 매국노로 취급될 만큼 죄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덕분에 해당 종교 또한 더 나쁜 이미지가 굳어졌었다. 

  작품 속의 평화 수감자는 종교 때문이 아닌 스스로의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였다. 글이 쓰이던 2019년 그때에 종교적 이유로 병역 거부를 하는 사람들의 대체 복무가 막 인정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반인으로서 병역 기피는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사회 환경과 힘겨운 옥살이에서도 분노하지 않고 수행의 길을 걷는 루민과 남자 친구의 옥바라지를 현명하게 하는 루나의 편지로 책은 채워져 있다.

  글을 읽다 보면 감방생활이라는 것의 어려움을 알 수 있기도 하지만 두 연인이 나누는 깊이 있는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둘 사이의 편지니 연애편지가 맞으나 얼마나 사색을 많이 하는 커플이면 이런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 정성껏 나눌 수 있는지 사뭇 놀랍다. 

  수감된 초반의 이야기는 수감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무료한 삶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수감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많은 감시와 제약이 있는 수감자의 삶은 절제와 인내의 연속인 것 같다. 리폼과 업사이클링의 대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불경이나 성경 등을 필사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감옥에서는 건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맨손 운동에 대한 관심도 높다. 폴 웨이드의 <죄수 운동법> 같은 책은 일터에 수감된 우리에게도 분명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줄 것 같아서 담아 두었다.

  중반을 지나면 대화의 주제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것들로 확장된다.

  첫 번째는 감옥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얘기에 관심이 갔다. 감옥이라는 것은 죄에 대한 벌을 주기 위함이지만 교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두기 위함의 목적에만 있는 것 같다. 사나운 개를 우리에 한 동안 넣었다가 기한이 지나면 그냥 풀어주는 것과 뭐가 다를까. 옥살이의 고단함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우고 더 사나워진 범죄자를 사회로 돌려보내는 무책임함은 아닐까. 이미 깊어져 버린 범죄자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수감자 중에는 생계형 범죄자도 많기 때문에 가두기만 하는 일차원적인 해결법으로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홍콩 시위대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이어진 태극기 집회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새로운 이해가 생긴 것 같다. 물론 그들의 행동이 정당하고 정의롭다고는 인정하지 않지만 그 심리만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어르신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은 박정희라는 인물보다는 그 시절 힘겹게 노력하여 잘 살게 된 자신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박정희는 그 시절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고 박정희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저자가 얘기한 태극기 부대에 성조기를 가지고 나오는 심리 또한 이해가 갔다. 혹자는 미국이 가장 싫어했던 대통령이 박정희인데, 박정희랑 성조기랑 같이 가지고 나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니라고까지 얘기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트라우마가 아닐까 얘기한다. 6.25 전쟁 때 미국이 우리나라를 구했다는 그 믿음은 지금의 현실도 미국이 구해줄 거라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니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미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병역을 거부하는 것도 병역을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에 참여는 했지만 전투는 거부했다. 감방 생활을 하던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베트남 참전용사 들고 함께 귀국했는데, 그를 본 참전 용사는 '자신의 전투를 한 사람'이라고 응원해줬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굉장히 분노했을 것 같지만, 그 참천 용사의 이해의 폭은 과히 존경할 만하다.

  루민은 평화 수감자이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얘기와 옥살이의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지만 수행에 관한 이야기, 사회 문제에 관한 이야기, 사색 등이 가득하다. 루민이 감방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루나가 관련 기사나 서적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형식이었다. 

  폭넓은 이해와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더불어 엄청난 양의 양서를 추천받았다. <예언자>, <에크리>, <선의 연구>, <죄수 운동법>, <유토피아>, <반역은 옳다> 등등 장바구니가 더 무거워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연애편지를 들여볼 생각이었으나 최선 전에 있는 사회 문제를 거침없이 다루는 둘의 이야기가 나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수행은 감옥이나 수도원에서 하는 거라는 말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른 일들을 부정 없이 받아들이는 두 지적 동반자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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