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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뒷모습 (안규철) - 현대문학

야곰야곰+책벌레 2022. 4. 1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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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너무 좋아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에 담고, 그렇게 구매를 해버린 기억이 남은 책이다. 책장 속에 한동안을 보내다가 눈에 띄어 꺼내어 읽어본다. 사물의 뒷모습이라니 참 멋진 말과 시선인 것 같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은 잎'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며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세상은 자신의 인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내 눈에 닿은 그것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12개의 얼굴을 가진 어느 관음보살상처럼 여러 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그래서 고민하고 사색하는 행위는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엄청난 통찰력을 얘기하는 책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적어 둔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렇네'라며 시큰둥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구나'라고 돌 트이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런 글과 함께 담긴 담백한 삽화는 보는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몇 가지를 얘기하자면 이렇다.

  코로나 시대에 집안에 틀여 박혀 쓰는 말은 스무 단어나 될까 싶다. 반대로 시끌벅적한 바깥세상에서도 쓰는 말은 스무 단어보다 많을까? 무의미한 대화를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저 획일화된 대화만 하고 있진 않은지 고민해 본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그럼, 이만'. 사실 그렇게 다양한 단어를 써가며 논쟁할 일도 사색을 나눌 일도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문장에는 항상 주어가 존재한다. 생략을 하든 하지 않든 말이다. 주어는 동사를 하는 주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바람이 분다'와 '봄이 온다'에서 주어인 '바람'과 '봄'은 정말 스스로 불고 스스로 오는 것일까. 태양이 있고 지구가 회전하고 기체의 대류가 발생하고 그런 온갖 것들이 행위를 만든 거라면 주어의 의지대로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 성립하는 걸까. '나는 공부한다'는 순수하게 내가 공부하는 것일까. 무언가에 의해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말장난 같지만 그것이 우리가 쓰는 말의 뒷모습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물론 말꼬리 물기를 하면 결국 모든 의지의 주체는 '빅뱅'이 되겠지만, 주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느샌가 자신의 일 외에 것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사용자 편의성'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격리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TV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서 많은 부분을 알아서 해주고 쉽다. 하지만 고장이 났을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고작 전문가를 부르는 일이다. 사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 그저 부품 모듈만 교체해 줄 뿐이다. 사실 이런 관계는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사물 혹은 사건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장 난 것이 우리 자신이거나 우리가 속한 집단일 때 혹은 그 집단을 움직이는 제도일 때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의 개인적 사색을 담은 책이다. 속지가 빳빳해서 펼쳐보기 힘든 점이 있지만 마치 도화지를 사용한 화가의 느낌처럼 글을 담았다. 그래서 두꺼운 종이가 마음에 들었다. 무심코 지나쳐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스친 많은 것들과 나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모습을 보려는 노력은 나에 다르게 보는 능력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게 해 줄 것 같다.

  빠르게 걷는 것만이 미덕인 시대에 잠깐 서서 쳐다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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