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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은행나무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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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에 의해서 발견되어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등 많은 사회운동가,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준 이 책의 제목은 강렬하다. 그렇다고 무정부주의를 얘기하는 책은 아니었다. 법치국가에서도 법률 앞에는 정의가 있어야 하고 국민 이전에 인간이어야 한다는 소로우의 주장은 아프다. 책에는 25년간 일기를 적었다는 소로우의 5편의 탁월한 에세이와 시대를 움직였던 '시민의 불복종'이 담겨 있다.

  정부는 작을수록 좋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준비되었을 때의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혁명의 권리를 얘기한다.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저항은 비폭력 저항이다. 노예제도를 추구하고 멕시코 땅을 침범했던 그 시절의 국가에 대해 소로우는 저항했다. 미국의 행동은 시민의 동의가 없이 일부 노예제도 지지자들의 것이라고 했고 그런 국가에게 내는 세금은 그 일에 동조한다는 것이었다.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금하는 국가의 행태에 소로우는 더욱 강한 목소리를 낸다. 정의를 얘기하면 감옥에 보내는 나라에서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을 곳은 감옥이라는 것이다.

  대중은 대체로 덕이 없어 정의가 자신을 통해 승리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한 표 앞선 다수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사람이 정의롭다면 그는 이미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정의를 행하려고 하는 자를 '절대적으로 선한 자'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하게 되고 국가로부터는 흔히 적으로 취급받는다. 그들은 선을 퍼트릴 소중한 효모 같은 존재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참다운 인간은 군중의 강요를 받아 동요하지 않는다. 정부는 지능이나 정직 대신에 강력한 물리적인 힘으로 무장한다. 정부는 옳고 그름을 다수가 아닌 양심으로 정하는 일이 없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그 당시 소로우가 미국 정부에 대한 분노가 얼만큼인지 느낄 수 있었다. 폭력적으로 항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의무를 하지 않음으로써 후견인의 자리를 내어 놓는다 저항이었다. 정부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국민은 의무에 저항하고 공무원은 직에서 내려옴으로써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범부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위대한 사상가들에게는 큰 울림이었던 것 같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정의는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동하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나는 덕이 없는 그저 한 명이 대중이며 절대적인 선한 인간은 아닌가 보다. 단체는 양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지만 단체는 양심이 없다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개인의 이타적인 모습은 집단의 행위에 도전하게 된다는 니버의 말은 나의 무책임함을 설명해 준다.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였던 그의 말은 20세기 많은 인권 운동에 영감을 주게 된다. 로버트 B. 다운스는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전염병과 패권 싸움 등으로 유례없이 큰 정부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상보다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소로우의 말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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