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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 - 문예출판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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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읽고 대단함을 느끼어 바로 구매하게 된 책이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다. 사실 막스 베버의 책들을 모두 담아 두었다. 두 번째로 만나는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학문을 직업으로 사람들이 갖춰야 할 조건과 자세에 대한 강의와 막스 베버의 교수 취임 연설을 담고 있다. 

  직업적으로 학문에 헌신하려고 결심할 경우, 놓이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며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학문을 하는 사람의 변화도 함께 얘기한다. 

  현대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 사건은 탈주술화 주지주의화, 합리화라고 얘기했다. 현대의 문명이 발전하는 것이 개인적인 지능이나 지식이 높아졌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 인류는 문명의 발달로 누리는 많은 것들을 지식 없이 사용하고 있는 동시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문명 초기의 개인보다 더 낮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 문명에서의 인간은 배우고 싶으면 언제나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생활에 개입하는 그 어떤 힘도 근본적으로 결코 신비하고 계산할 수 없는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믿고 있다. 이것은 탈주술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학문이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세 가지 도움을 주는데, 첫 번째로 기술적 지식을 제공하고 두 번째로 사고의 방법이나 도구, 이를 위한 훈련을 제공한다. 세 번째는 명확함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오늘날의 학문은 예견자나 예언자로부터 받는 은총의 선물이 아니며 현인과 철학자의 성찰의 일부분도 아닌 자각과 사실관계에 이바지하는 전문적인 '직업'에 불가하다.

  학문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주지 않는다. 학문은 '알 가치가 있다'라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궁극적인 입장에 따라 받아들이든가 거부하든가 해야 하는 그것에  의미에 관련해서만 해석될 수 있을 뿐이다. 그중 자연과학들은 궁극적인 법칙들이 알려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학문들이 기술하는 것들 조차 '가치가 있는지', '의미가 있는지' 등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문은 그런 것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의학은 사람의 살릴 뿐이지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하지 않는다. 학문은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성과를 원할 때 적합한 수단이 될 뿐이다.

  예언자와 선동가는 강의실 강단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길거리'로 나아가 공개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들은 비판이 가능한 곳에서 말해야 한다. 말하고 듣는 것이 일방적인 강의실에서 듣는 자에게 개인적인 정치관을 주입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학자가 자신의 가치판단을 갖고 들어올 때 사실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중지된다. 학자라면 학생들에게 불쾌한 사실들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교단에 서는 것은 교사이지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자신의 신념에 대한 무한 책임을 얘기했다면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는 중립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문은 그 자체로 수단이지 가치나 행동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이념이든지 그것에 대해 사실적으로 전해줄 뿐 그 판단에 대해서는 유보하는 것의 학문을 하는 자의 태도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 취임 연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치적 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의 독일의 문제점은 지금의 한국의 문제점과 공통된 점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뒤처진 건지) 경제적인 힘과 국민을 정치적으로 지도하는 사명에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사실을 잊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들에 정치적 성숙이 있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위대한 국민에게 정치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속물근성에 의한 지도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세계 강국이라는 지위 때문에 개개인이 지속적으로 정치훈련을 쌓는 세계 강국과 달리 우리는 국가가 위협받을 때만 급하게 그 정치훈련을 받는다. 위험은 대중에게 있지는 않다. 지배 계급과 상승하는 계급에게 정치능력을 부여하는 문제가 사회정책 문제의 궁극적인 내용이다. 사회정책 활동의 목적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통합이다. 

  거대한 정치 교육은 저물어가는 계급에게 권력을 쥐어주지도 않고 상승하는 계급의 정치적 미숙을 해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우리도 6월 항쟁 이후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이 정치를 장악하지 못했던 것이 정치적 미숙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거대 양당에 휘둘리기도 하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 또한 새로운 세력에 대한 정치적 미숙과 믿음 부족이 아닐까 싶다. 

  인구 구성비와 동일하게 국회가 이뤄져 있다는 덴마크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려면 지금처럼 정치는 기분 나쁘고 귀찮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어놓고 토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 혐오를 만든 것도 대중에게서 정치를 멀어지게 만들어 마음대로 하려고 했던 구 정치권의 유산이라고 생각하면 주권자로서 어떻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익히고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독일의 정치 교육이 생태 교육과 더불어 엄청 중요시되고 있는 이유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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