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이 대국을 펼친지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딥러닝은 하나의 메가 트렌드가 되어서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 속에서 개발된 많은 진단키트나 백신들도 딥러닝의 도움을 받았다. 인터넷서 만나는 챗봇과 우리가 알지 못하게 정보를 걷어가서 제안해주는 수많은 쇼핑과 SNS 추천 알고리즘도 딥러닝의 산물이다. 최근에는 AI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초지능에 기대를 거는 과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1958년 최초의 인공 신경망 알고리즘인 '퍼셉트론'이 나온 뒤에도 AI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인공지능에 체스 챔피언을 이길 때에도 그렇게 놀라운 반응은 없다. AI는 한동안 암울한 시기를 보냈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2년 CNN(나선형 신경망)을 가지고 나온 알렉스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그래픽카드의 가격을 올렸는데, GPU를 이용한 병렬 컴퓨팅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인간을 넘어서는 지능이라는 초지능은 가능할까? 아니면 인간이 만든 기계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초지능이 가는 길목에는 얼마나 인간다운가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앨런 튜닝이 제안한 튜링 테스는 언제 통과할 수 있을까? 는 지금의 관심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AI는 압도적인 계산력으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부분이 있다. 많은 수학 문제 또한 풀어내고 있다. 이런 행동들은 압도적인 계산량에 기인하고 있다. 이것을 지능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인간의 행동이 아주 고도화된 조건에 대한 반사 행동이라면 AI는 그 반응의 수준을 뛰어넘음으로써 손쉽게 초지능에 다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운명론과 비슷해서 삶의 회의를 가져올 수 있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그럴 수 있다고는 얘기할 수 있다.
인간다움을 주장하려면 역시 자각과 의식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태초의 사건인 '빅뱅'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인간에 대해 알려면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AI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자각하는 행위다. 모든 의식은 그것으로부터 나온다. 단순한 반응이 의지가 되는 것이다.
'소드 아트 온라인:앨리시제이션'에는 이런 AI를 학습시켜 인간다움의 결정체 '플럭트 라이트'를 만들어 낸다. 엄청난 가속을 하고 있는 가상의 공간에서 AI는 태초의 인간이 진화하듯 그렇게 진화한다. 인간의 마음 그리고 '초지능'이라는 것이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AI의 발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은 초지능에 회의적이기도 하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미래로부터의 탈출>에 나오듯 인간은 동물원의 동물처럼 희귀 보호생물로 AI들에게 보호받을지도 모르겠다. AI가 인간을 닮았다면 선하기도 악하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어떤 두려움이 있어서 지금 멈추지 못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사회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AI가 어디까지 발전하기를 논하기 전에 급격하게 발전하는 과학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안전한 발전이 되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논하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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