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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 (서중석 외 지음) - 한울 아카데미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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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세월호로 인한 정부에 대한 분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서 폭발했다. 시민들의 무폭력 평화시위는 결국 대통령 하야라는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외신들은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에 대해 호평하였고 그날의 사건은 일부 지지자를 제외한다면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통합이라고 불릴만한 저항 운동이었다. 이해관계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이건 아니지 않냐라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새 정부가 들어선 날은 2017년 5월. 6월 민주항쟁이 있었던 딱 30년 만의 일이었다.

  왜 역사는 반복되는지. 30주년을 기념하여 얘기하는 6월 민주항쟁을 돌아보며 이 책은 만들어졌다. 3.1 운동, 4월 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이은 6월 민주항쟁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너무 쉽게 동력을 상실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달성한 뒤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너무 쉽게 와해되는 현상 때문인지 상대를 말살하지 않으려는 선비 정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감동적이면서도 안타까웠던 6월 민주항쟁에 대해서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박정희가 최재규의 손에 암살당한 뒤 유신 정권이 끝날 줄 알았지만 전두환은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며 다시 한번 군사정권을 만들었다. 공포 정치와 언론을 통제했다. 그 와중에 발생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픈 기억이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발전 지향 대신 안정화를 택했고 세계적인 경기와 함께 13% 성장이라는 단군이래 최대의 성장을 갱신하고 있었다. 미국 또한 한국의 민주주의보다는 체제의 유지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며 전두환 정권을 덮어두고 있기도 했다. 이런 자신감은 전두환을 하여금 고삐를 풀게 풀게 만드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고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때문에 국제적인 시선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민운동의 불씨를 살리는 거름이 되었다.

  학생, 지식인 그리고 정부 야당 등 지식으로부터 출발한 운동은 노동자와 넥타이 부대 그리고 여성들의 참여로 인해서 전국민적인 투쟁이 되었다. 독재에 대한 뿌리 깊은 반대가 있었던 것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전국민적 열망이 있었다. 6월 항쟁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박종철 고문 교사 사건과 그에 대한 은폐 폭로, 이한열 열사의 죽음 그리고 4.13 호헌조치는 국민의 분노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4.13 호헌조치는 전두환의 자충수라고 할 만큼 악수였다.

  6월 항쟁의 안타까운 점은 바로 '독재타도'와 '헌법 개정'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노태우가 6.19 공동선을 발표하면서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고 운동권은 목적을 잃었다. 게다가 김영상, 김대중이 이끌던 야당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다투었다. 일제의 잔재를 해결할 때에도 독재의 잔재를 해결할 때에도 늘 완벽하게 없애지 못했다. 6.19 공동 선언은 6월 항쟁이 가져온 뚜렷한 성과였으나 전두환의 전략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후임을 자기 손으로 뽑아 안위를 지키려고 했던 전두환은 6월 항쟁에 떠밀려 결국 마지막 수를 둔다. 그것은 6.19 공동 선언을 노태우가 하게 하여 주목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노태우는 전두환과 자연스레 선을 긋는 행동으로 군인이라는 이미지를 지워갔다.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며 국가의 안보를 책임질 사람이라고 어필하며 다녔다. 그러는 동안에도 야당은 단일화도 이뤄내지 못했다.

  전두환은 언론을 이용하여 영남에서 김대중에게 발생한 사건과 호남에서 김영삼에게 발생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지역갈등을 부추겼다. 그리고 지역갈등의 원인을 두 김 씨에 있다고 프레임을 만들어 갔다. 노태우는 북풍을 이용하며 안정화된 정권을 주장하며 지지 세력을 확대해 갔다. 그리고 선거 전날 알 수 없는 이유로 KAL기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노태우는 즉각 북한 김일성의 공작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노태우는 33%로 대통령이 되었다. KAL에 대한 의문은 여러 해 계속해서 추적했으나 여전히 명확한 것은 없다. 단지 사형 선고를 받은 김현희 씨를 갑자기 사면시킨 당시 정부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평화의 댐 때문에 정말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6월 항쟁은 다른 운동들과 다르게 먹고 살기 편한 시절에 생겼다. 그러나 13% 경제 성장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70%에 달하는 중산층들은 더 좋은 세상을 원했고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사람들, 여성의 권리를 찾으러 나온 여성들,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동자들 그리고 지식인들과 학생들. 모두가 열망하는 뜨거운 것이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 다시 소위 보수 정권이 들어섰다. 그들은 분단되지 않았다면 정치를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북풍을 이용한다. 국가를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 노동자를 희생하려고 한다.  전두환이 하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새삼 느낀다. 편파적인 여론의 행태는 군부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돈에 엎드린 형태이지만 역할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두환이 의도적으로 갈라놓았던 (물론 두 김 씨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지역 갈등은 어쩌면 분단국가여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통일을 위해 그렇게 애쓰던 많은 민간의 일을 보수 정부들은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늘 가로막았다. 냉전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한 스텐스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던 것 같다. 보수는 늘 안보를 테마로 정권을 유지하려 했지만 국방에 대한 투자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민주 항쟁들이 많았지라는 자부심이 때로는 수치심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취약한 나라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휘둘리는 것은 분단된 국가, 끝나지 않은 전쟁 그리고 지역이기주의 때문일까. 지금은 그때보다 더 복잡하고 더 다양한 존재 그리고 더 많은 이해관계로 이뤄져 있다. 이념과 신념의 문제를 넘의 자본의 독재 아래 서로를 겨누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정쟁 이슈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문제였다. 우리는 돈에 대해 횃불을 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세종대왕이 자랑스럽고 이순신에 열광하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높은 시민 의식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이해관계에 맞게 투표한다. 민주주의를 끌고 가려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자랑스러워만 하지 말고 조금 더 살펴보면 어떨까 싶은 5월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근현대사를 더 자세히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이렇게 따로 시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될 만큼..

  60페이지 남짓의 총평만 읽어보아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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