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과학자 중 한 명을 뽑자면 바로 김상욱 교수다. 김상욱 교수의 설명에는 순수하게 과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물리학자의 단호함이 보이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에는 이야기가 있다. 우주는 떨림이고 인간은 울림이라는 표현은 과학적 의미를 품고 있으면서도 너무 멋스러운 말이다.
경향신문에서 연재했던 '김상욱의 물리 공부'를 기초로 새롭게 만들어낸 책이다. 인간의 죽음이 단지 원자의 재배열이라는 무미건조한 물리학자의 시각을 가졌지만 무엇보다 인간들과 물리학이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엄청 어려운 이론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김상욱 교수는 그냥 옛날이야기처럼 적어낸다. 어떤 과학 교양서보다 친근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4부에 거쳐 작성되어 있다. 우주, 시공간, 중력, 파동 정도의 키워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기본적인 이론 설명이기도 하고 과학사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 철학을 한 스푼 올렸다. 과학적 낭만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같으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믿는 것을 본다', '서로가 서로에게 낙하한다.', '사라지는 것은 없다. 변화할 뿐' 소 제목에서 보이는 철학적 제목들이 눈에 띈다. 지극히 과학적이지만 너무 멋진 것 같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우주는 138억 년 전에 빅뱅이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보통의 생각이다. 빅뱅이 일어나고 38만 년이 지나고 나서 빛은 그 존재를 드러냈다. 하지만 인간이 빛을 알게 된 것은 고작 15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빛은 과학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오늘날의 1m는 빛의 속도와 시간으로 정해진다. 길이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1초라는 것은 세슘 원자가 내는 특정 진동수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현재의 현상을 깨닫기 위해서는 세상이 시작된 장소를 알아야 한다. 과학에서 빅뱅이 가지는 의미다. 빅뱅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한 점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현재의 이론으로는 굉장히 과학적인 추론이며, 많은 이론들을 받쳐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갑자기 "꽝"하고 우주가 나타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주의 모든 것은 한 점에서 출발했고 세상이 나이고 내가 세상이라는 것은 철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답변이 아닐까 싶다.
다른 면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결국 원자로 이뤄진 하나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원자들이 새로운 개체를 만들었고 죽으면 다시 산산이 부서져 또 다른 형태의 무엇인가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불교의 윤회라는 것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동양 철학은 굉장히 과학과 가깝다. 최근에 등장한 양자역학에서 하나의 것이 서로 대립되는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상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중용', '정반합' 등처럼 정과 반이 공존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동양인들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데 거부감이 없다. 실제로 상보성을 주장한 보어는 중국을 방문해서 태극문양을 보고 감명을 받고 자신의 귀족 예복에 태극문양을 새겼다.
평등하다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정말 신선했다. 여자와 남자는 99.5% 동일하게 이뤄져 있다. 태아는 안드로겐이라는 남성 호르몬에 노출되지 않으면 여성이 된다. 하지만 여성 호르몬은 그저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월경 주기를 위해 필요할 뿐이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인간의 원형은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원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성이 인간의 원형이라는 프레임이 과학적으로는 틀렸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난자 하나에 1억이 넘는 정자들이 경쟁하여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프레임도 틀렸다. 임신 20주째 여성 태아는 700만 개에 달하는 난자를 갖지만 사춘기 즈음이면 40만 개만 남는다. 이것은 자체 경쟁을 통해서 최상의 난자만을 남기는 과정이다. 잘해야 몇 시간을 경쟁하는 정자에 비해 난자는 평생을 경쟁한다. 태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난자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성을 논하기에는 이제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다. 오히려 인간과 99% 동일한 유인원들을 바라보며 인간과 동물의 평등에 대해서 생각할 지점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다. 무지를 인정하고 아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다. 충분한 증거가 없을 때, 불확실한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과학의 힘이다. 과학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다. 과학이란 지식이라기보다는 태도인 것이다.
천체물리학에서 양자역학까지 총망라된 교양도서다. 너무 쉽고 너무 재밌게 쓰여 있다. 과학적 지식이 없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인문학적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 지식들이 어느샌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어린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고 얘기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나는 도서였다. 과학에 흥미가 필요하다면 어떤 책 보다 이 책을 먼저 집어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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